좌승희 < 한국경제연구원장 >

정부는 최근 기업의 높은 부채비율과 차입경영의 개선을 위해 차입금
이자의 손비인정 축소, 채무보증 축소방안, 결합재무제표 작성 및 동일계열
여신한도제도입 등을 추진중이다.

기업의 취약한 재무구조개선에 대한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정책대안들이 차입경영개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보다는 기업의 경영
환경을 악화시키고, 금융시장 개입으로 인한 금융자율화저해 등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우선 차입경영 개선을 위한 바람직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기업경영의 의의와 차입경영의 원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요구된다.

기업은 정부의 경제정책 금융환경 등 주어진 경영환경속에서 "이윤극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조직"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이 과정에서 최선의 경영
방식을 창출해 내게 되기 때문에 경영방식은 기업들이 결정하는 경제내생
변수이다.

따라서 국외자인 정부관료나 경제학자들이 기업의 행태가 바람직하냐,
않느냐를 단정하고 특정경영방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정부의 역할은 단지 기업이 처한 경영여건을 개선함으로써 기업들이
경영행태를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데 한정되어야 한다.

최근 정부가 기업차입경영행태 개선이라는 이름아래 추진하고 있는 정책
들은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정책의 기본원칙에서 벗어나고 있는 감이 있다.

국내기업들이 경쟁국들에 비해 부채비율이 높은 이유는 과거 경제개발
당시부터 자기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직접금융시장의 미발달과 저금리정책
등으로 인한 간접금융의 수요증가에 기인하고 있으며, 나아가 생산물 시장
에서의 경쟁부족은 기업들로 하여금 이러한 경영행태에 안주하게 하는
작용을 해왔다.

그러므로 소위 차입위주경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기업경영
행태를 규제하려 할 것이 아니라 금융자율화와 시장경쟁의 촉진을 통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차입경영 해소방안을 모색토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최근의 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대안들은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치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어서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앞으로 기업의 과다한 차입경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첫째 차입경영 개선과 채무보증 축소는 정부의 시장개입이 아닌 금융시장
또는 금융기관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질적인 금융자율화를 통해 금리자유화의 정착과 금융기관의 대출 심사
능력 제고,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을 도모함으로써 금융기관 스스로 신용도에
따라 대출여부를 결정하고,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대해서는 기업간 또는
모기업의 채무보증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높은 대출금리의 적용이나 대출을
중단함으로써 차입경영이 개선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직접금융시장의 활성화를 통하여 간접금융에 대한 의존도를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

유상증자나 기업공개에 대한 규제완화, 적극적인 자본자유화를 통한
외국인 주식투자확대 등을 통하여 기업들의 직접금융기회를 확대함으로써
기업들로 하여금 간접금융에 의한 자금조달 비중을 축소시키고 나아가 높은
금융부채 비율을 해소해 나가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생산물시장의 경쟁을 촉진시킴으로써 기업 스스로 경쟁력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 노력을 강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생산물시장의 경쟁이 심화된다면 기업 스스로 한계사업을 정리하고
타기업에 대한 채무보증 단절과 자금유입을 차단시키는 등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차입경영의 개선효과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정부의 정책은 일관성 유지가 매우 중요하고 가능한 한 기업의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규제신설은 피해야 하며, 중복규제나 필요없는
규제들은 시급히 철폐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상호채무보증 해소도 경쟁력을 상실한 한계기업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킴으로써 가능하나 정부는 "부도방지협약"을 만들어 오히려 한계
기업의 퇴출을 제한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펴고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끝으로 최근 정부가 추진중인 차입경영 해소시책들은 대부분 정부가 할
일이라기 보다는 금융시장 또는 금융기관 그리고 민간기업들이 자생적으로
해 나가야 할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가 시장기능을 무시하고 인위적인 개입 및 제재조치를 통해
금융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개방화 자율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며, 정부가
의도하는 정책목적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아직도 산업정책과 관치금융의 사고에 젖어 금융시장개입과
민간기업의 경영행태 규제를 통해 차입경영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과신을
버리고, 금융자율화를 통한 은행의 대기업 감시기능강화, 직접금융기회의
확대, 기업간의 경쟁촉진 등을 통해 민간시장 질서의 자율조정 기능을
살림으로써 과다 차입경영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경영환경이 보다 경쟁적으로 바뀜에 따라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재무구조
개선과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며, 정책당국자들도 어느 경우에 있어서든
건전한 재무구조 보다 취약한 재무구조를 선호하는 기업은 없으며 결국
취약한 재무구조는 특정한 경영환경의 산물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