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통치하의 인도 민족운동 지도자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자신이
기소된 재판장에서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최후진출을 했다.

간디는 자기의 죄가 다른 기소된 사람들보다 더 크다고 말하면서
엄숙하고 명확하게 자신에게 최고의 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그에 감복한 판사는 자리에서 얼어나 간디엑 나름의 경의를 표하고
난 뒤 6년형 선고했다.

이 광경이야 말로 기사도에 의해 재판이 진행되던 서양의 명예법정을
떠올리게 하는 전형이다.

친절하게 듣고 빠진 것 없이 대답하고 냉정하게 판단하고 공정하게
판결을 하는 것이 재판관의 네가지 구비요건이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지적에도 거의 부함되는 재판장의 분위기라고 하겠다.

그러나 현실은 재판관들로 하여금 그러한 네가지 요건을 충족시킬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형사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진술을 친절하게 일일히 듣고 챙기다 보면 그
진위를 제대로 할수 있는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미국 미주리주의 제임스 허킨스 페크판사가 14년간의 재직중에 헝겁으로
눈을 가리고 재판장석에 나왔었다는 일화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그래도 따를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처럼 냉철한 이성과 객관적 판단력이 자질로 요구되는 재판관은 더구나
죄를 지은 사람들에겐 두려운 존재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재판정의 분위기를 경직시키는 주요한 요인이 되어온 것이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들이 친절하면서도 공정한 재판을 진행할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자 오는 9월 중순 형사법정에서 모의 재판 시연회라는 연극을
공연한다는 이색적인 소식이 눈길을 끈다.

지원장을 비롯 모든 소속판사들이 대본 제작 연출은 물론 판사 검사 피고
중인 방청객 정리 등을 맡아 재판정의 분위기를 역시자시해 본다는 것이다.

아뭏든 재판관이 피고에게 친절하게 대해 준다는 것은 공정한 법 집행
이전의 인간적인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닐수 없다.

이제 딱딱한 재판정에도 훌륭한 바람이 불어올 모양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