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싸움을 하겠다는 단체가 하나 더 늘었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가 최근 긴급이사회를 열고 전국에서 항의
집회를 열기로 하는 등 복지부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수퍼 등에서 단순의약품을 팔 수 있도록 하자는 경제규제개혁위원회의
안에 대해 복지부가 제동을 건데 대한 반발이다.

한.약분쟁이나 표준소매가논쟁 등이 벌어지면서 "나의 건강"을 놓고
"남들이 벌이는 싸움"을 신물나게 구경해야 했던 국민들은 또 다시 답답한
마음으로 관람석에 앉아야 할 처지가 됐다.

물론 수퍼의 약품판매를 허용하기 어렵다는 복지부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약사가 아닌 사람들이 약을 팔 경우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 10명중 8명이 수퍼에서 약을 파는 것을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에 대해 복지부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문제다.

복지부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묘안은 단순의약품의 수퍼판매 허용
여부를 의료개혁위원회에서 정해주는 대로 따라하겠다는 것.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한 셈이다.

주무부처로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나마도 임시방편으로 그칠 위험이 높다.

의개위가 오는 10월이면 활동이 끝나는 국무총리의 자문기구라는 점에서
그렇다.

어차피 공은 다시 행정부로 넘어오게 돼 있다.

관련단체들의 압박작전은 또 다시 재현될 게 분명하다.

복지부가 그때는 또 어떤 비책을 들고 나올지 궁금하다.

사실 요즘 복지부의 무책임한 행정은 이뿐 아니다.

97년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법에 명시한 의약분업도 의개위에
넘겨버렸다.

오는 7월로 예정돼 있던 전국민 연금제도 실시도 마음대로 연기했다.

그동안 연금제도의 문제점이 수없이 지적될 때 꿈쩍도 안하다가 코앞에
일이 닥치자 "못하겠다"고 발을 빼버린 것이다.

이같은 무책임한 복지부의 정책은 보건복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복지부는 과천청사 앞으로 몰려드는 "투사"들이 왜 늘어나고 있는지 그
이유부터 곰곰히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조주현 < 사회1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