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래문화중 하나인 풍수는 좋은 땅과 나쁜 땅을 가려내는 일로 알려져
있다.

땅엔 나름대로의 기가 흐르는데 기의 흐름이 좋은 곳엔 흉과 화가 피해가고
길과 복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기의 흐름이 좋은 곳은 명당이란 말로 표현된다.

그 명당을 찾아 부모를 비롯한 조상의 묘소를 안치하는 것을 자손됨의
도리로 여겨 왔다.

그러나 단순한 명당찾기가 한국적 풍수의 전부는 아니라는 주장을 담은
책이 나왔다.

지리학자 최창조(전 서울대 지리학과교수)씨가 펴낸 "한국의 자생풍수I, II"
(민음사)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60년대부터 30년이상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한국의
명당을 정리하고 풍수사상의 본질을 집대성한 책.

누구나 부러워하는 서울대 교수 자리와 바꾼 역저라 할수 있다.

저자는 91년 서울대 교수를 그만둔뒤 일체의 강의활동을 중단하고 개인연구
에만 몰두해왔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 고유 풍수는 좋은 땅 찾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많은 사찰이 재앙을 불러올지도 모를 나쁜 땅에 세워져 있는 것에 대한
예리한 지적이다.

실제 답사한 결과 전국적으로 유명한 절터는 오히려 침수의 피해가 염려되고
산사태의 우려가 있는 땅이라는 결론을 냈다.

"한국의 자생풍수는 결코 좋은 땅을 찾아 다니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나쁜 땅을 발굴해 사원을 건설하고 장승 솟대 암자 등을 세워
인위적으로 신성시하고 조심하도록 하는 것이 자생풍수사상의 본래모습이다"

그는 나쁜 땅 찾기를 우선시하는 전래 풍수사상에는 땅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담겨 있다고 해석한다.

그가 소개한 대표적인 예가 "풍수사상의 비조" 도선국사.도선은 나쁜 땅을
골라 절과 탑을 지어 나쁜 기를 없애려고 시도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뜸과 침으로 병든 어머니의 나쁜 기를 돌리려는 것과 같은 마음가짐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나쁜 것을 바로잡는 것을 본령으로 삼았던 한국의 자생풍수는 조선
성종 무렵 중국의 이론 풍수가 유입되면서 쇠퇴했다는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후 집터나 묘자리에 명당을 잡아 현세의 복을 비는 술법풍수가 활개치게
됐다고 그는 진단한다.

이러한 고유 풍수에 대한 통찰은 2권중 1권 "한국의 명당을 찾아서"에
잘 정리돼 있다.

1권은 크게 4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첫번째는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간 최창조"에 대한 내용을 실었고
두번째는 한국지리학의 시조인 도선국사를 소개하고 있다.

현장 기행문인 세번째장에서는 자신의 풍수관, 우리 자생풍수의 흔적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놓고 있으며, 마지막에는 풍수에 대한 주변의 논박에 대한
저자의 반론이 담겨 있다.

한국의 명당 자료집이란 부제가 붙은 "한국의 자생풍수 2"는 현장 풍수를
도별로 정리해 놓았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