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회] (10) '여의도 순복음교회' .. 최대 단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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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은 경제에만 생긴 것이 아니다.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대한하나님의성회.당회장 조용기)는 가장 짧은
기간에 세계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함으로써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교인 70만명의 세계 최대 단일교회.
한국경제의 성장신화가 물질문명의 부흥이었다면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신화는 복음정신의 부흥이었다.
성장 원동력은 오순절 성령운동과 뜨거운 기도운동.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메시지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오늘의 영광을 있게 했다.
58년 서울 대조동 천막교회에서의 시작은 참으로 미약했다.
신학교를 갓 졸업한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 (지금의 조목사
장모)가 공동묘지 옆에 천막을 치고 목회를 시작했을 때 교인은 불과 5명.
교회 종이 없어 가스통을 개조해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의 열성적인 목회로 3년 뒤에는 마을 인구보다 많은 4백명의
신도를 확보했다.
61년 서대문 순복음중앙교회로 "확장이전" 한 지 5개월만에 신도가 2배로
늘고 68년에는 8천명을 넘어 지금의 여의도로 옮기게 됐다.
69년 당시 여의도는 모래바람과 철새들만 스쳐가는 허허벌판.
재정적인 문제로 건축이 중단될 위기에 직면한 조목사는 앙상한
철골기둥을 끌어안고 "죽으면 죽으리라"며 눈물로 울부짖었다.
73년 9월, 드디어 1만명이 동시에 예배드릴수 있는 대성전이 완공됐다.
그간의 혹독했던 고난이 은혜의 단비로 변해 성전을 적셨다.
지금은 해외선교사만 52개국에 8백27명을 파송한 복음대성소로 우뚝 섰다.
국내 심장병 어린이 2천5백여명에게 무료 시술을 해줬고, 지구를 60바퀴
이상 돌면서 1천회의 해외성회를 열었다.
순복음교회의 교리신조는 오중복음 (구원 성령충만 신유 축복 재림)과
삼중축복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조목사는 목회 40여년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신유와 구원의
축복으로 인도하는데 주력했다.
개척교회 시절 성도들이 병들거나 실패한 사람, 힘없고 고통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도 이 때문.
수많은 환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의
이름도 널리 알려졌다.
"나 자신이 폐결핵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방황했고 가난한 시절을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환란과 궁핍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압니다.
너무 가난하거나 병이 깊어서,창피해서 교회문턱을 밟기 어렵던 사람들이
성전을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지요"
그는 앞으로 제3세계권에 훈련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다른 교회나
선교단체와의 연합사역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한다.
5개국어에 능통한 그는 해외성회를 열 때마다 유창한 현지어로 설교해
"날개달린 지구촌 목회자"로 이름나 있다.
세계 하나님의 성회 총재이기도 한 그의 설교는 1백50여개국 3천만명에게
위성방송과 육성녹음으로 전달된다.
"미래교회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정보화 물결에 순응해야 해요.
우리교회는 인터넷에 교회소식과 복음이 담긴 홈페이지를 개설했고,
관련기관인 순신대학교와 국민일보 엘림복지타운 기도원 등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요즘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잃어버린 것 같다"며
"지금이야말로 신뢰감 회복과 자정운동을 통해 스스로 거듭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고두현 기자 >
< 순복음교회 교인들 >
<>재계
= 김용운 (엘칸토그룹회장) 김생기 (영진약품회장)
이종은 (대산건설대표) 이병훈 (신진운수대표)
정두현 (천마월드대표) 이융달 (중흥건설대표)
박성곤 양만득 (회계사)
<>정.관계
= 김수한 (국회의장)
박명환 박주천 유용태 정영훈 김명섭 박종우 (신한국당의원)
류선호 (국민회의의원)
이건개 (자민련의원) 김태정 (법무부차관)
이규호 (전문교부장관) 배선일 (전국방부장관)
<>법조계
= 양인평 (춘천지방법원장)
유지담 (서울지법남부지원장)
전용태 (청주지검검사장)
장석화 박홍규 이영복 김학만 김종성 (변호사)
<>학계
= 손동수 (순신대총장) 강석규 (호서대총장)
김성혜 (순신대대학원장) 박성배 (경원대교수)
윤한식 (KIST.호서대대우교수)
<>문화예술계
= 김번 (조각가) 전계현 (영화배우)
서천식 조수일 조행우 (건축가)
<>언론계
= 차일석 (국민일보사장)
김우광 (SBS이사)
오계수 (한국경제신문편집담당국장대우)
최기봉 (SBS영업3국장) 박범익 (EBS편성국장)
이건장 (KBS전문위원)
<>의료계
= 이기연 (강남성심병원장) 류근하 (한국성심병원장)
김난형 (성신치과원장) 송영달 (송영달치과원장)
김창원 (누가의원장) 박우택 (순생외과원장)
주택소 (주택소의원장)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1일자).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대한하나님의성회.당회장 조용기)는 가장 짧은
기간에 세계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함으로써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교인 70만명의 세계 최대 단일교회.
한국경제의 성장신화가 물질문명의 부흥이었다면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신화는 복음정신의 부흥이었다.
성장 원동력은 오순절 성령운동과 뜨거운 기도운동.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메시지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오늘의 영광을 있게 했다.
58년 서울 대조동 천막교회에서의 시작은 참으로 미약했다.
신학교를 갓 졸업한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 (지금의 조목사
장모)가 공동묘지 옆에 천막을 치고 목회를 시작했을 때 교인은 불과 5명.
교회 종이 없어 가스통을 개조해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의 열성적인 목회로 3년 뒤에는 마을 인구보다 많은 4백명의
신도를 확보했다.
61년 서대문 순복음중앙교회로 "확장이전" 한 지 5개월만에 신도가 2배로
늘고 68년에는 8천명을 넘어 지금의 여의도로 옮기게 됐다.
69년 당시 여의도는 모래바람과 철새들만 스쳐가는 허허벌판.
재정적인 문제로 건축이 중단될 위기에 직면한 조목사는 앙상한
철골기둥을 끌어안고 "죽으면 죽으리라"며 눈물로 울부짖었다.
73년 9월, 드디어 1만명이 동시에 예배드릴수 있는 대성전이 완공됐다.
그간의 혹독했던 고난이 은혜의 단비로 변해 성전을 적셨다.
지금은 해외선교사만 52개국에 8백27명을 파송한 복음대성소로 우뚝 섰다.
국내 심장병 어린이 2천5백여명에게 무료 시술을 해줬고, 지구를 60바퀴
이상 돌면서 1천회의 해외성회를 열었다.
순복음교회의 교리신조는 오중복음 (구원 성령충만 신유 축복 재림)과
삼중축복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조목사는 목회 40여년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신유와 구원의
축복으로 인도하는데 주력했다.
개척교회 시절 성도들이 병들거나 실패한 사람, 힘없고 고통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도 이 때문.
수많은 환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의
이름도 널리 알려졌다.
"나 자신이 폐결핵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방황했고 가난한 시절을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환란과 궁핍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압니다.
너무 가난하거나 병이 깊어서,창피해서 교회문턱을 밟기 어렵던 사람들이
성전을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지요"
그는 앞으로 제3세계권에 훈련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다른 교회나
선교단체와의 연합사역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한다.
5개국어에 능통한 그는 해외성회를 열 때마다 유창한 현지어로 설교해
"날개달린 지구촌 목회자"로 이름나 있다.
세계 하나님의 성회 총재이기도 한 그의 설교는 1백50여개국 3천만명에게
위성방송과 육성녹음으로 전달된다.
"미래교회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정보화 물결에 순응해야 해요.
우리교회는 인터넷에 교회소식과 복음이 담긴 홈페이지를 개설했고,
관련기관인 순신대학교와 국민일보 엘림복지타운 기도원 등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요즘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잃어버린 것 같다"며
"지금이야말로 신뢰감 회복과 자정운동을 통해 스스로 거듭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고두현 기자 >
< 순복음교회 교인들 >
<>재계
= 김용운 (엘칸토그룹회장) 김생기 (영진약품회장)
이종은 (대산건설대표) 이병훈 (신진운수대표)
정두현 (천마월드대표) 이융달 (중흥건설대표)
박성곤 양만득 (회계사)
<>정.관계
= 김수한 (국회의장)
박명환 박주천 유용태 정영훈 김명섭 박종우 (신한국당의원)
류선호 (국민회의의원)
이건개 (자민련의원) 김태정 (법무부차관)
이규호 (전문교부장관) 배선일 (전국방부장관)
<>법조계
= 양인평 (춘천지방법원장)
유지담 (서울지법남부지원장)
전용태 (청주지검검사장)
장석화 박홍규 이영복 김학만 김종성 (변호사)
<>학계
= 손동수 (순신대총장) 강석규 (호서대총장)
김성혜 (순신대대학원장) 박성배 (경원대교수)
윤한식 (KIST.호서대대우교수)
<>문화예술계
= 김번 (조각가) 전계현 (영화배우)
서천식 조수일 조행우 (건축가)
<>언론계
= 차일석 (국민일보사장)
김우광 (SBS이사)
오계수 (한국경제신문편집담당국장대우)
최기봉 (SBS영업3국장) 박범익 (EBS편성국장)
이건장 (KBS전문위원)
<>의료계
= 이기연 (강남성심병원장) 류근하 (한국성심병원장)
김난형 (성신치과원장) 송영달 (송영달치과원장)
김창원 (누가의원장) 박우택 (순생외과원장)
주택소 (주택소의원장)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