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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모임] 정건진 <중앙개발 의료원서비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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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개발 빌딩엔지니어링사업부 한우리낚시 동호회는 10년전에 20명의
    동호회원으로 결성됐다.

    기존에 낚시매니아들만을 대상으로 동호회를 꾸려갔으나 올해 들어와서
    동호회의 다양성과 활성화를 목표로 전문 낚시꾼만이 아니라 초보자들도
    참여할수 있게 했다.

    낚시의 즐거움을 전문가나 초보자 모두 공유하는 "열린 낚시" 모임으로
    자리매김 한것.

    특히 작년부터는 단순히 바다고기만을 잡는 수준에서 벗어나 오염되어
    가고 있는 우리국토에 대한 사랑운동으로 까지 발전시키고 있다.

    바다사랑운동의 계기가 된것은 지난해 여름.

    프랑크톤의 이상번식으로 동해안은 물론 서해안 남해안의 양식어장까지
    덮쳐 어민들의 분노와 환경단체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하게 되었다.

    여름철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오물과 각종 생활쓰레기가 우리 낚시회의
    낚시줄에 어김없이 건져졌고 이에 우리 회원들은 "쓰레기 건지는 낚시회"를
    자처하고 낚시가 끝난후 주변의 각종 쓰레기를 제거하는 활동을 정기적으로
    벌인 것이다.

    올해 4월 따사로운 봄햇살을 맞으며 고문인 필자와 이성모회장 (빌딩
    의료원서비스팀)을 비롯 32명의 우리 낚시회는 충남 서산 팔봉 고파도라는
    작은 섬을 찾게 되었다.

    이곳은 대산석유화학단지와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곳으로 바다밑을
    들여다 볼수 있는 청정해역이며 서해 드넓은 갯벌에서 방금 잡아올린
    낙지와 바지락 등의 싱싱한 해산물도 맛볼수 있는 곳이다.

    미용엔 회가 최고라는 김화순 사우 (빌딩 중부서비스팀)는 낙지를
    원없이 먹어보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소원이라며 자그마치 10마리 낙지를
    5분채 걸리지 않아 꿀꺽.

    술안주로 군침을 삼키던 주변의 주당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4월의 따사로운 햇살속에서 낚시대를 드리운 꾼들이 표정은 진지했지만
    정작 첫수확의 기쁨은 바다낚시 2회 출전의 왕초보 유한옹 사우 그는
    20cm가 넘는 놀래미를 잡아 주위의 부러움과 함께 왕초보 딱지도 떼는
    계기가 되었다.

    뱃머리에서 오수를 즐기던 최상규 사우 (빌딩 의료원서비스팀)는 잡은
    고기로 회를 친다는 소리에 엉뚱하게도 바닷속으로 뛰어들 뻔했으나
    허리에 묶어놓은 밧줄 덕분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다음 모임은 동해안으로 떠날 예정이다.

    7월에 동해 바다낚시를 결정한 것은 바로 우리 동호회가 고기만 낚는
    친목모임이 아니라 우리국토를 사랑하고 환경을 살리겠다는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회원 모두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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