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구조의 고도화 전략을 추진하자''

21세기를 코앞에 둔 국내 유화업계에 떨어진 지상명령이다.

선진국과는 갈수록 거리가 멀어지고 후발개도국이 바싹 뒤쫓아 온 상황에서
우리 업체에 다른 종류의 조언은 할수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

21세기는 다른 모든 업종에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석유화학 분야에선
대변혁이 예상되는 시기다.

일본과 미국 유럽 지역의 선진 석유화학 기업들은 국제적 규모의 합병과
제휴, 구조개편, 고부가가치 분야의 진출 등으로 경쟁력을 더욱 세계화
집중화할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들은 더욱 메이저화되고 그에 걸맞게 힘을 키우지 못한 업체들은
더욱 예속되기 쉬워진다는 얘기다.

가격결정 구조도 판이하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구조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의해 대부분
결정됐으나 이때부터는 공급량의 급증으로 각국들의 자급화가 가속화되면서
원가를 기본틀로 하는 새로운 가격 체계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구미에서 시작된 석유화학 산업은 ''서진''을 계속해 이제 한국을 지나
중국과 동남아 지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마치 십수년전의 섬유산업을 보는 느낌이다.

시장도 중심을 중국과 동남아로 옮겼고 생산기지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대폭 확충되고 있다.

고도화 전략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할 경우 저가 대량 수출국의 위치를
겨우 잡고 있다가 그나마 잃어가는 섬유산업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지도
모른다.

중저가 제품은 ''서진''이라는 대세를 따라 후발개발도국에 넘겨주고 전혀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전환기 유화산업의 목표는 그래서 분명해 보인다.

중저가 위주로 구성된 사업구조를 정밀화학 의약 등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바꿔가는 것이다.

우선 범용제품에 대한 전략부터 수정해야 한다.

이제 무조건 많이 만들어내는데서 탈피해 국내외 수급전망을 감안해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대신 성장성이 높고 부가가치가 큰 정밀화학과 신소재 제품을 겨냥한
경쟁력 확보에 전략의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생산기술을 같이 공유하는 노력도 기술여야 한다.

공동연구를 통한 시너지효과의 창출 및 연구개발 비용의 효율화와
환경문제에 대한 공동대응도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덧부텨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로의 자원집중을 통해 사업구조를
전면 재편하는 작업도 필수적이다.

덧붙일 것은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세계화작업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21세기를 대비해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추구해야할 것은
범용제품의 비중을 점차 축소시켜나가고 정밀화학 엔지니어링플라스틱
신소재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적극적인 개발로 수익을 창출하는 고도화된
사업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목표가 분명한 만큼 실행계획은 업계와 정부가 힘을 합쳐 짜야 한다.

업계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냉정히 판단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돈벌이가 되지만 수년내에 사양화할 것이 분명한 사업을 잡고
있는 사업가에겐 미래가 있을수 없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모처럼 구조조정 기회를 맞은 업계에 방해되는 기존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 21세기를 맞는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