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6월말 저녁 9시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90년대 초반 이 일대를 오렌지식으로 물들이며 사치향락과 과소비의
대명사로 떠올랐던 그들이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로데오거기의 그 거리의 지배자인 신세대의 모습에서 엄숙하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정적마저 느낄수 있다.

낯선 상표가 붙은 옷을 걸치고 외국의 한적한 고급주택을 연상케하는
카페에서 가볍게 맥주를 즐기는 그들을 발견할 수 있을뿐.

물론 한때의 힙합패션을 한 10대 소년들을 발견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여전히 10대들은 선배들의 뒤를 이어 거리를 휘젓고 다닌다.

하지만 아직 거리의 주인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로데오거리의 주인은 누굴까.

고급소비취향을 갖고 복잡함보다 단순함을 즐기며 내일을 준비하기보다
오늘의 쾌락에 만족하는 지금의 신세대들이다.

로데오거리와 인근 주택가 깊숙이 파고든 옷가게 및 고급스런 카페는
변화하고 있는 신세대의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고급 브랜드의 옷가게에서 반팔티 하나에 10만원 이상을 주고 사입느데
거침이 없다.

한벌에 보통 70만~80만원, 약간 비싸면 1백50만원이 넘는 정장을 파는
매장도 너무나 태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이거리에서 성업하고 있는 중고 옷가게도 약간은 충격적이다.

외국인들이 입다가 버린 청바지가 10만원, 상의는 20만원을 넘지만
들어오는 족족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대기업들도 로데오거리 신세대들의 위력을 잘알고 있는듯 안테나숍을
곳곳에 설치해 이들의 취향을 테스트한다.

여기서 성공하면 전국적인 히트는 보장된다는 것이 이곳 상인들의
견해다.

로데오거리 주택가 주변의 집들은 이들의 취향에 맞춰 고급카페로
변하고 있다.

커피 한잔에 6천원이나 하지만 주말에는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

신세대들의 소비행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머리 깎고 드라이하는데 10만원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팁도 1만원 정도는 가볍게 쥐어준다.

이근처에 자주 놀러나온다는 김상호(22)씨는 "금요일 토요일이 되면
2대중 1대는 외제차지요. 그리고 노래방 록카페 등은 이제 가기 싫어해요"
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디로 갈까.

"가라오케에 주로 가지요. 1주일에 한두번 정도. 친구 4명이 가면 약
1백만원 정도 들어요. 나눠서 내니까 큰 부담은 아니요"

가라오케나 로데오거리 신세대들의 새로운 놀이터로 변하고 있다.

노래하고 춤출수 있는 공간이 새롭게 마련된 것이다.

맥주 한병에 7천원, 국산 양주한병에 20만원이 넘고 마스터라고 불리는
애들에게는 2만~3만원씩 팁이 주어지는 공간.

로데오거리는 이근 청담동쪽으로까지 뻗어간다.

이거리 신세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남들이 하는 것을 싫어한다.

록카페도 야타족도 로바다야키도 남들이 모두 즐길수 있게 되자 또다시
나만이 할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쉽게 보이지 않는 가라오케와 고급카페, 그리고 어딘가로.

이들은 7월을 기다린다.

90년대초에 그랬듯이 오렌지족의 원조격인 해외 유학파들이 방학을 맞아
뭔가를 들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뭔가 새로운게 있겠지, 그리고 물이 좋아지겠지.

내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오늘에 충실한 신세대들.

그러나 자신의 문화가 없어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수혈받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는 신세대.

이것이 로데오거리의 정적을 설명하는 하나의 단초가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