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신은 그가 지영웅의 존재를 알고 하는 소린줄 알고 그의 트릭에 잠깐
넘어간다.

그 순간 미친 사람으로 변하는 그의 얼굴에 섬득하는 광풍을 영신은
미처 보지 못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그의 재규어에 올라탄다.

무심을 가장한 윤효상의 얼굴에 푸른 분노의 불길이 무섭게 퍼져오른다.

나는 너를 오늘 반쯤 죽여버릴 테다.

그는 영신이 자기를 싫어했고 같이 자기를 거부했던 그동안의 여러
기억들을 반추하면서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무섭게 밝는다.

너 오늘 윤효상에게 혼좀 나봐라!

그의 은빛 자가용이 강변도로를 무섭게 질주할 때에야 영신은 긴장하면서
윤효상의 표정을 힐끗 살핀다.

치밀한 장인 덕택에 어차피 위자료로 받을수 있는 것은 실크회사
하나밖에 없겠지만, 그렇게 때문에 그동안 그가 영신에게 당한 여러
서운했던 사건과 기억들을 한꺼번에 앙갚음하고 싶다는 광적인 분노에
사로잡힌다.

어떤 남자가 있는 것은 감을 잡았지만 그녀와 같이 여행을 했을 거라는
확증은 없다.

알려면 알수록 있다.

"지금 집으로 안 가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겁먹은 소리로 영신이 묻는다.

"왜 겁나는 것 있어? 당신같이 좋은 백그라운드를 가진 여자가 뭘
겁내?"

"난 저녁에 약속에 있다구요"

이때 그녀의 핸드폰에 크게 울린다.

그녀는 핸드폰을 구로 가져감녀서 울상을 한다.

겁이 많은 그녀는 언제나 궁지에 몰리면 울먹이는 여자다.

그것이 남자들의 보호본응을 자극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어쩔수 없이 떨려 나온다.

"누님 나예요. 지코치. 거기 어딘데 그리 잡음이 심하지요? 어머니께서
지금 남편과 회사에 갔다고 해서. 아무튼 목소리 듣고 싶어 걸어보는 거야.
자기 보고 싶다. 어떻게 여섯시까지 기다리지?"

아무 것도 모르는 지영웅은 그녀에게 한껏 어리광을 피운다.

그러나 영신은 지금 상당히 난처하다.

핸드폰속의 음성은 남편까지도 반은 들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핸드폰은 성능이 최고로 좋은 것이었다.

"이따가 편한 위치에서 내가 걸게요. 핸드폰을 열고 있어요. 어쩌면
우리 저녁약속 못 지킬 것도 같으니까, 너무 오래 기다리지 말고. 다시
전화할게"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