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미국이 한국과 북한을 보는 시각 .. 오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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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공단 <미 국무부 한반도문제 자문연구원>
지각변동과 같은 큰 변화는 아니지만, 미미하나마 끈질기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다.
북한이 겪고있는 식량위기, 나진-선봉지역에서 국제기업인들을 위해 열리는
무역및 투자세미나, 한국해안에 내려보낸 잠수함사건들, 마치 축제의
폭죽처럼 연이어 터지는 남한에서의 정치-기업 스캔들.
무지막지한 크기와 깊이의 이같은 사건들 때문에 작으나마 계속되는
미-북관계의 향상을 잘 분석해보고 음미하는 중요한 일을 우리는 잊고있다.
덩달아 미국과 북한의 관계와 연계되어 미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정확히 인지해야 될 때가 왔다.
과거에 미국이 본 북한은 사회주의전제국가, 테러리즘국가, 모멸을 받아
마땅한 폐쇄적 적성국가로 요약할수 있다.
이런 표현들이 미국 저널리즘이나 보수적이며 배타적인 정책 엘리트들
사이에서 완전히 사라진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단순한 사회주의 전제국가에서
전통과 가부장적 유교국가의 풍습과 문화가 사회주의 제도와 공존하는 북한
고유의 정치체제 국가라는 좀더 미묘하고 복합적인 인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테러리즘을 감행하는 국가의 낙인이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꼬리표이지만, 국무부와 국방부의 관리들은 공공연히 북한을 테러리즘
국가로 정의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북한이 주도한 것으로 판단되는 테러리즘은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이
마지막이었고, UN주재 북한 대표부에서 국무부에 테러리즘 꼬리표를
떼어달라고 요청한 서신이 벌써 오래전에 보내졌기 때문이다.
폐쇄적 적성국가로서 여전히 저널리스트나 다른 방문객들을 선별 차별하는
북한이지만, 세계식량기구 위원들을 포함하여 북한을 방문하고 오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북한은 더이상 괴물들의 나라가 아니라, 미국과
수교를 원하는 경제파탄의 나약한 국가로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뉴욕 워싱턴 또는 제3국의 도시에서 빈번히 접촉하는 양국의 실무진들은
날씨 점심 국제사건 등을 토의하며 음료와 식사, 대화를 나누는 관계정상화의
동반자들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의 눈에 북한의 관료들은 1960년대 세계은행과 국제기구의
문을 두드리며 한국경제의 개혁을 위해 도와달라고 요청하던 한국의
의욕적이며 전지하던 경제 정치 관료들을 연상시켰다.
대부분의 북한 실무자들은 서투른 가운데서도 깍듯이 국제규범을 알고,
영어로 통화가 가능하며, 배우려고 애쓰는 진지한 그룹들이다.
미국 실무자들이 회담후 흔히 사용하는 표현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와
"애쓰고 있다" 등이다.
경제분야의 북한지식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고 딱딱하다는 것을 미국인들은
느낀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경쟁, 물질적 유인(material incentives),
매니지먼트에 대한 개념이 약하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북한지도자가 과감히 선봉장이 된다면 이들 살무자의
머리에 고정된 선입감과 유약한 경제지식이 빨리 향상되리라는 것을 대부분
믿고있다.
1996년 워싱턴을 방문한 경제관료들중 두세명은 탁월한 무역정보와
능란한 영어, 회의석상에서 기민하게 대응하는 유연성과 두뇌회전을
보여주면서 동참했던 필자의 가슴을 기대와 희망으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 방문단 일원중 가장 젊었던 경제관리는 심지어 의복에서조차 흰셔츠
대신에 쪽빛 물색깔 셔츠에 짙은 넥타이를 매고 나와 미국관리들 사이에서
오히려 서울거리를 활보하는 TV 프로듀서나 미술대학원생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고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한국과 미국의 안보동맹관계,개방된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동반자로서의
관계는 그 기반이 단단하고 끈질긴 관계이다.
오래 살아온 부부처럼 로맨스가 파삭파삭 불꽃튀는 신선한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의 존재를 잘 아는 친구사이이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시각은 한국의 경제 정치 성장과 궤도를 나란히 한다.
한국도 OECD회원국, WTO의 동반자, 난폭하기는 하지만 민주주의가 꾸준히
향상되는 선진국의 일원이다.
미국의 눈에 한국은 더이상 고래사이의 새우가 아니라 큰 중국, 러시아,
일본고래라는 사이를 유연하게 누비는 돌고래, 즉 돌핀격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성장의 폭이 큰 만큼 미국이 한국에 거는 기대 역시 크다.
미국은 한국이 관행이나 문화적 풍습보다는 법과 규범을 따르는 나라,
경제성장과 정치성장의 등식을 노력하는 나라,국내기준과 국제기준을 다같이
존중하는 나라가 돼주기 기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 미국은 한국이 북한을 상대하는 태도나 정책에서 입김이
꺼져가는 가난한 이웃국가를 껴안고 추스를수 있는 포용과 자신감의 국가가
돼주기를 원한다.
불행하게도 미국시각의 현주소는 계속되는 실망과 잔잔한 혐오이다.
특히 북한문제를 정치적 도구, 정치화하려는 한국 지도 엘리트들에 대한
실망은 한없이 크다.
최근 미국과 북한관계는 계속 증진되는 관계라기 보다는 연못에 고인
물같은 정체성을 보인다.
국민이 굶어죽어 가고있는 가운데, 최고 지도자가 뚜렷한 식량과 경제위기
타결의 비전과 정책제시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통령선거의 와중에서 계속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의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 대형기사들을 연이어 제공하고 있다.
미국 엘리트들은 북한의 개혁비전 부재와 한국의 정치비리 대량생산이라는
아이러니컬한 두 틈바구니에서 아스피린 한병 정도는 들이킬 준비를 하고
두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8일자).
지각변동과 같은 큰 변화는 아니지만, 미미하나마 끈질기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다.
북한이 겪고있는 식량위기, 나진-선봉지역에서 국제기업인들을 위해 열리는
무역및 투자세미나, 한국해안에 내려보낸 잠수함사건들, 마치 축제의
폭죽처럼 연이어 터지는 남한에서의 정치-기업 스캔들.
무지막지한 크기와 깊이의 이같은 사건들 때문에 작으나마 계속되는
미-북관계의 향상을 잘 분석해보고 음미하는 중요한 일을 우리는 잊고있다.
덩달아 미국과 북한의 관계와 연계되어 미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정확히 인지해야 될 때가 왔다.
과거에 미국이 본 북한은 사회주의전제국가, 테러리즘국가, 모멸을 받아
마땅한 폐쇄적 적성국가로 요약할수 있다.
이런 표현들이 미국 저널리즘이나 보수적이며 배타적인 정책 엘리트들
사이에서 완전히 사라진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단순한 사회주의 전제국가에서
전통과 가부장적 유교국가의 풍습과 문화가 사회주의 제도와 공존하는 북한
고유의 정치체제 국가라는 좀더 미묘하고 복합적인 인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테러리즘을 감행하는 국가의 낙인이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꼬리표이지만, 국무부와 국방부의 관리들은 공공연히 북한을 테러리즘
국가로 정의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북한이 주도한 것으로 판단되는 테러리즘은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이
마지막이었고, UN주재 북한 대표부에서 국무부에 테러리즘 꼬리표를
떼어달라고 요청한 서신이 벌써 오래전에 보내졌기 때문이다.
폐쇄적 적성국가로서 여전히 저널리스트나 다른 방문객들을 선별 차별하는
북한이지만, 세계식량기구 위원들을 포함하여 북한을 방문하고 오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북한은 더이상 괴물들의 나라가 아니라, 미국과
수교를 원하는 경제파탄의 나약한 국가로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뉴욕 워싱턴 또는 제3국의 도시에서 빈번히 접촉하는 양국의 실무진들은
날씨 점심 국제사건 등을 토의하며 음료와 식사, 대화를 나누는 관계정상화의
동반자들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의 눈에 북한의 관료들은 1960년대 세계은행과 국제기구의
문을 두드리며 한국경제의 개혁을 위해 도와달라고 요청하던 한국의
의욕적이며 전지하던 경제 정치 관료들을 연상시켰다.
대부분의 북한 실무자들은 서투른 가운데서도 깍듯이 국제규범을 알고,
영어로 통화가 가능하며, 배우려고 애쓰는 진지한 그룹들이다.
미국 실무자들이 회담후 흔히 사용하는 표현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와
"애쓰고 있다" 등이다.
경제분야의 북한지식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고 딱딱하다는 것을 미국인들은
느낀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경쟁, 물질적 유인(material incentives),
매니지먼트에 대한 개념이 약하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북한지도자가 과감히 선봉장이 된다면 이들 살무자의
머리에 고정된 선입감과 유약한 경제지식이 빨리 향상되리라는 것을 대부분
믿고있다.
1996년 워싱턴을 방문한 경제관료들중 두세명은 탁월한 무역정보와
능란한 영어, 회의석상에서 기민하게 대응하는 유연성과 두뇌회전을
보여주면서 동참했던 필자의 가슴을 기대와 희망으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 방문단 일원중 가장 젊었던 경제관리는 심지어 의복에서조차 흰셔츠
대신에 쪽빛 물색깔 셔츠에 짙은 넥타이를 매고 나와 미국관리들 사이에서
오히려 서울거리를 활보하는 TV 프로듀서나 미술대학원생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고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한국과 미국의 안보동맹관계,개방된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동반자로서의
관계는 그 기반이 단단하고 끈질긴 관계이다.
오래 살아온 부부처럼 로맨스가 파삭파삭 불꽃튀는 신선한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의 존재를 잘 아는 친구사이이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시각은 한국의 경제 정치 성장과 궤도를 나란히 한다.
한국도 OECD회원국, WTO의 동반자, 난폭하기는 하지만 민주주의가 꾸준히
향상되는 선진국의 일원이다.
미국의 눈에 한국은 더이상 고래사이의 새우가 아니라 큰 중국, 러시아,
일본고래라는 사이를 유연하게 누비는 돌고래, 즉 돌핀격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성장의 폭이 큰 만큼 미국이 한국에 거는 기대 역시 크다.
미국은 한국이 관행이나 문화적 풍습보다는 법과 규범을 따르는 나라,
경제성장과 정치성장의 등식을 노력하는 나라,국내기준과 국제기준을 다같이
존중하는 나라가 돼주기 기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 미국은 한국이 북한을 상대하는 태도나 정책에서 입김이
꺼져가는 가난한 이웃국가를 껴안고 추스를수 있는 포용과 자신감의 국가가
돼주기를 원한다.
불행하게도 미국시각의 현주소는 계속되는 실망과 잔잔한 혐오이다.
특히 북한문제를 정치적 도구, 정치화하려는 한국 지도 엘리트들에 대한
실망은 한없이 크다.
최근 미국과 북한관계는 계속 증진되는 관계라기 보다는 연못에 고인
물같은 정체성을 보인다.
국민이 굶어죽어 가고있는 가운데, 최고 지도자가 뚜렷한 식량과 경제위기
타결의 비전과 정책제시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통령선거의 와중에서 계속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의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 대형기사들을 연이어 제공하고 있다.
미국 엘리트들은 북한의 개혁비전 부재와 한국의 정치비리 대량생산이라는
아이러니컬한 두 틈바구니에서 아스피린 한병 정도는 들이킬 준비를 하고
두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