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열린 제4차 경제규제 개혁위원회가 정부부처 및 단체간 이견을
조율해 각종 영향평가의 통합방안 등 적지 않은 과제에 대해 합의안을
마련한 것은 평가할만하다.

특히 사업시행자에게 엄청난 경제적 시간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환경
교통 인구 재해 경관 등 5개분야의 영향평가를 대폭 간소화하기로 한 것은
매우 실질적인 규제완화조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행 영향평가제도가 얼마나 사업자를 괴롭히고 있는지는 크든 작든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30만평의 택지개발사업을 벌일 경우 영향평가별 용역비용은
환경 1억1천만원, 교통 1억원, 인구 4천만원, 재해 8천만원 등 총 3억3천
만원이 소요되며 평가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가량을 허송세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영향평가별로 대상사업면적이 다를 뿐만 아니라 유사한 성격의 영향
평가가 별도로 실시됨에 따라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경제규제개혁위가 이번에 평가기관들이 제휴해 통합평가서를
작성토록 의무화한 것은 영향평가의 간소화라는 점에서 진일보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부처간 이견으로 각종 평가제도 자체를 통합하는데 실패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다음달 2일에 열릴 고건 총리주재의 규제개혁추진회의에서는 평가제도의
통합은 물론 평가대상사업 기준면적의 상향조정 등 보다 대폭적인
완화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경제규제개혁위원회는 몇가지 괄목할만한 규제완화를 이끌어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민감한 문제에서 정부부처와 단체의 이기주의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특히 건설교통 보건복지 문화체육부 등이 사업자단체 가입 및 회비징수
강제, 건축사 고용건설업체의 설계시장 참여문제, 미술장식품설치 의무제도
개선방안 등에 관한 논의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 앞으로 규제완화
작업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건축물에 대한 미술품 설치의무
제도가 예술계의 반발을 등에 업은 문화체육부의 반대로 개선안 마련에
실패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문체부는 미술품설치의무 대상건축물의 면적기준을 상향조정하는 등의
대안을 내놓았지만 규제개혁의 본뜻에 부합하려면 이 문제는 제도자체를
폐지하고 건축주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되풀이 강조하건대 규제개혁은 제도개선 자체보다 의식의 문제이다.

아무리 제도적으로 규제를 철폐 완화한다 해도 공무원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한 피규제자의 발목을 붙들어맬 수 있는 구실은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다.

정부 각부처들은 규제완화가 겉돌고 있는 책임을 일선창구 담당자들의
의식부족으로만 돌리지 말고 위에서부터 부처이기주의를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