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어. 너에게 버림을 받더라도
실속있게 살아야 되지 않겠어? 나도 이제 사십이 넘었어.

너에게는 대단한 아버지도 있고, 사회적 명예도 재산도 있지만 나는
마음변한 와이프만 바라보다가 바보가 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어.

안 그래? 이제 곱게 죽여줄게. 나도 더 이상 너의 비위나 맞추면서 사는
서방노릇이 싫어졌다 이 말이야"

그는 진짜로 그녀의 목을 완강하게 누르며 힘줄이 툭툭 불거진 두손으로
그녀를 죽일 듯이 덤빈다.

"내가 잘못했어요. 안 그럴게요"

그녀는 겨우 그렇게 애원한다.

"안 속아. 너는 살아나가면 나를 폭행죄로 고발할 거다.

네가 아니라 너의 부친께서 그렇게 하겠지. 나와 같이 죽자. 너를
죽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나를 만만하게 본 것이 너의 큰 실수였어" 이 때 핸드폰이 요란스레
울린다.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바라본다.

공포에 질린 영신이 애원하는 시선으로 외친다.

"받으세요. 빨리요"

그러자 윤효상이 손을 그녀의 목에서 풀며 얼른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나다. 윤서방인가? 거기 지금 어디지?"

"네, 저, 별장에 와 있습니다"

"별장에는 왜 갔는가?"

사실 김치수는 동네에 관리인을 두고 누가 그곳에 오면 자신에게 삐삐로
알려주도록 하고 있었다.

그는 그 별장으로 누가 들어가면 곧 동정을 살펴서 김회장에게 알리고
품삯을 받는다.

만사에 치밀한 김치수는 그의 별장에 누가 왔다 갔는가를 늘 알 수
있도록 밀탐꾼을 채용하고 있었다.

그런 모든 조치가 다른 사람들이 못 따라가는 김회장의 천재적 재산관리
방법이었다.

"우리 영신이 거기 있어? 좀 바꿀래?"

"네, 장인 어른"

그는 마지못해 수화기를 영신에게 준다.

그리고 귀에다 대고 쓸데 없는 짓 말라는 엄포를 놓는다.

영신은 구세주를 만난듯 아버지의 전화가 반갑다.

"아버지, 나예요. 왜 그러셔요?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천리안이니까. 거기서 언제 떠날거냐?"

"곧 떠날거예요. 너무 걱정마세요"

영신의 목소리가 이상하다.

순간 걱정말라는 영신의 대답에 김치수는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들이 싸우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그의 머리를 날카롭게 스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