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인으로 남을 것인가, 철저하게 중국인으로 변신할 것인가, 아니면
반향반중으로 살아갈 것인가"

홍콩 재벌가의 운명을 통해 중국에 반환된 홍콩의 미래를 조명한 소설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소설가 하춘추(55)씨의 장편 "거상" (전 3권 청목미디어).

조선출신의 홍콩 거상 슈이 가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홍콩의 내일과 경제
사회적인 변화를 추적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홍콩기업인들의 일국양제에 대한 갈등과 현실인식을 엿보게
하는 현장보고서이자 홍콩의 운명을 점칠수 있는 미래예측서로도 읽힌다.

특히 홍콩과의 교역등 현안이 걸려있는 우리의 입장을 한국계 갑부집안의
운명이라는 관점에서 묘사해 관심을 모은다.

작가 하씨는 종합상사 사업본부장과 건설회사 중역을 거쳐 무역회사와
수출업체를 운영한 경험을 살려 작중 상황의 사실성을 잘 살렸다.

96년 첫장편 "태양은 동쪽으로 지지 않는다"로 주목받았던 늦깎이작가.

그는 소설 말미에 장래가 불투명해진 홍콩의 대안으로 캐나다 밴쿠버에
제2홍콩을 건설하려는 프로젝트를 설정했다.

슈이 가의 원조는 조선 선조때 역적 누명을 쓰고 청나라로 피신한 선비
서진학.그와 조선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병택이 슈이 째라는 중국이름으로
홍콩적을 취득하고 실업가로 변신하면서 부의 신화가 시작된다.

그의 외동아들 슈이 핑은 "타이쿤"(거상)칭호를 받고 아들 깡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빅토리아만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대저택 빅토리아맨션을
짓는다.

그러나 거상2세 슈이 깡의 사생아인 열일곱살짜리 딸 장찡이 출현하면서
이들 집안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가출과 음행으로 말썽을 부리던 그녀는 우여곡절끝에 깡의 자리를
물려받아 거상4세가 된다.

고문변호사 폴과 결혼한 그녀는 슈이 썽을 낳지만, 폴은 거상2세의
미망인 소피 안과 비밀결혼식을 올리고 신안그룹을 창설한다.

제2의 홍콩건설을 위해 캐나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그는 이로 인해
엄청난 투자이익을 챙긴다.

소설은 무분별한 애정 행각으로 몸과 마음이 병든 장찡이 식도암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과 폴의 야망을 대비시킴으로써 명암이
엇갈리는 홍콩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