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를 생산하는 성광전기 김태공 사장(38)은 19세에
회사를 창업해 성공한 전형적인 자수성가 기업인이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전남 곡성 출신인 김사장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배고픔을 면하기위해 새벽에 아버지 몰래 집을 나와 동네 친구와 상경,
화곡동의 가방공장에 취직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친구는 힘들다고 며칠후 고향에 내려갔지만 그는 월급도 받지못했지만
밥은 먹을수있어서 야근을 마다하지않고 열심히 일했다.

몇달후 청계천에 있는 전원장치 제작 점포로 옮기게됐고 이곳에서도
그는 나이가 어리다고 처음 2년간은 월급을 받지못했지만 열심히 일했다.

밤에는 영어를 독학으로 공부해가며 외국의 어려운 전기 설계서적을
탐독했다.

덕분에 3년이 지나면서 10년 경력 기술자들보다 뛰어난 변압기 설계자로
청계천에서 유명해졌고 관련기업체에서 기술개발 주문이 줄을 잇게됐다.

지금도 변압기업계에서 많이 쓰는 새로운 설계방식들중에서 사실은
김사장이 청계천 시절에 기술개발해준 것이 수두룩하다고한다.

19세때인 79년 그는 8천원씩 받은 월급을 아껴 모은 돈 70만원으로
청계천에 점포를 열어 독립했다.

세무서에서는 미성년자라고 사업자등록증을 내주지않아 성년이 될때까지
6개월을 기다리기도했다.

방위병 복무를 하면서도 사업을 계속해 꽤 큰 돈을 마련, 공장을
설립하려다가 때마침 유명한 오대양 사건이 터지면서 이회사에 납품한 대금을
못받아 주저앉게됐다.

다시 하청일을 하면서 재기,93년 드디어 시화공단에 공장을 건축해 기반을
마련하게된다.

회사가 틀을 잡아가면서 그는 사장이 기술개발에만 매달려서는 회사를
경영할수없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사장이 기술을 훤히 알다보니 실무 기술진이 하는 일이 답답해지고 자기가
직접 나서게 되어 결과적으로 경영은 구멍가게 수준이 되더라는 것.

이젠 경영을 배우자는 생각에 한양대와 연세대 단국대의 최고경영자과정을
열심히 다녔다.

요즘은 경영자 입장에서 일을 해나가는 법을 터득하게됐고 또 중소기업
일수록 자체 브랜드를 키워야 살아남을수있다는 확신을 갖게됐다고한다.

김사장은 그래서 기술만 믿고 내수시장에 안주하는데서 탈피, 올해부터는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하기로했다.

첫번째 목표는 일본시장.선진국 시장에서 먼저 인정받아야 세계로
수출할수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를위해 최근 3억원을 투자해 수출전략 상품으로 고장을 자가 진단해
자동으로 무선호출해주는 인공지능형 무정전전원장치(UPS)를 개발했다.

이제품은 전력 효율은 기존의 80%선에서 95%선으로 높이고 크기는
절반가량 줄인 슬림형 디자인에 LCD패널을 채택해 운전조작이 편리하도록
개발됐다.

또 국내 처음으로 이회사가 개발한 피뢰기를 내장해 통신장비 계측기기및
자동화기계장비등의 장마철 번개로인한 파손 피해를 막을수있는게 특징이다.

내장 배터리의 장착 방식을 특수고안한 슬라이드 구조로 만들어 교체가
용이하고 유지보수가 쉽도록 했다.

김사장은 이제품으로 일본에 1백만달러어치를 첫수출하고 미국시장에도
진출할 구상이다.

김사장은 요즘은 그래서 틈만나면 영어회화 공부를 열심히 하고있다.

성공비결은 "열심히 사는것"이라며 고생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으면 반쯤은 성공한것이라고 말한다.

< 고지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