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눈부신 과학기술 발전은 상대적으로 정신문명의 퇴조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그동안 과학기술 발전을 주도해온 서구의 정신문명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이사장 정주영)은 창립 20주년을 기념, 1~2일
서울 호텔롯데데서 21세기 서구 정신문화의 위기상황을 살피고 그 대안으로
동양적 가치관을 모색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1세기의 도전, 동양윤리 응답''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는
이어령(이화여대), 투 웨이밍(미국 하버드대)교수가 기조연설을, 다카하시스
스스무 일본 메지로대 총장, 데이비드 칼루파하나 미국 하와이대 교수,
람지싱 간디연구소장, 박이문 포항공대 교수 등 16명이 주제발표를 맡았다.

이 가운데 심재룡 서울대 교수의 발표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정리 = 박준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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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문제와 동양철학 ]

1960년대를 정점으로 전세계는 산업화의 후유증인 심각한 환경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인간이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자연을 마구 개발한 결과 자연을 파괴한
것은 물론 스스로의 삶조차 영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방식에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 과학기술적 접근방식, 둘째 사회제도적 장치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기술과 제도를 뒷받침하는 종교철학적 세계관의 문제는 역시
철학적 사유의 영역이다.

철학적 사유없이 사회현상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불가능하듯 환경문제도
철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환경위기의 진원지를 살펴보면 인간중심주의, 더 나아가 인간집단
이기주의를 세련되게 표현한 서양철학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서양철학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여겨 인간을 중심으로 하등동물과
고등동물로 나누고 있다.

근세 서양철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도 강아지
따위는 의식없이 움직이는 기계에 비견했을 정도다.

자연을 물질내지 무력한 기계로 여기는 서양철학은 유태-기독교에서 발원,
그리스 로마철학의 원자론과 기계론 등으로 이어져 근대과학으로 가지를
쳤다.

이어 산업혁명을 통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경제체제에 속하는 기술을
낳았다.

이에따라 자연개발을 빙자한 자연파괴를 일삼는 환경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환경위기의 원인이 자연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 기초한 형이상학에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철학적 치유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찾음으로써 가능하다.

60년대 환경윤리에 대한 모색으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린 화이트
2세는 환경문제에 대한 구체적 치유책으로 동양철학 전통중 하나인
선불교로의 방향전환을 시사한 적이 있다.

이를 필두로 인도의 브라만교와 불교, 중국의 도가와 유가사상 등이
환경문제와 결부돼 거론되고 있다.

이 5가지 동양철학이 환경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형이상학과 자연관을
제시하고 있는지 따져보자.

먼저 베단타철학(브라만철학)에선 유일한 실재가 브라만이라고 보는
일원론적 형이상학을 주장한다.

때문에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며 이기심을 버리고 일체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지니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베단타철학은 생명 외경이 개별적 존재만을 대상으로 해 전체
생태계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는게 단점이다.

불교는 모든 사물이 인연 화합 소생으로 연결된다고 보고 일체의 악행을
짓지 말고 선행을 할 때 이 세상의 온갖 고통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양인들의 소비행태를 모범으로 인정치 않고 욕심과 집착을 줄이라는
부처의 가르침은 환경문제 해결에 희망을 준다.

도가와 유교는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고 공동체의식을 고취시킴으로써
서구의 반생태주의 개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개념 적용으로 구체적인 환경문제를 해결하기엔 두가지
철학 모두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선불교는 불교의 무아와 도교의 무위가 결합한 개념이다.

환경철학이 지향하는 인간과 자연의 혼연일체 또는 몰아적 통합에 가장
가깝다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동양철학과 마찬가지로 실용성을 가지려면 철학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동양철학이 서양철학과 달리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양철학을 한 묶음으로 보고 환경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겠다는
자세는 성급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동양철학에서 환경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발견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