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광산구 소촌동에 있는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94년 6월 노조가 쇠파이프로 무장한채 생산시설을 점거하며 한달째 파업을
강행하자 경찰 10개 중대가 들어가 농성중인 근로자들을 강제연행했던 강성
사업장이다.

그러나 올해는 딴판으로 달라졌다.

파업에 들어가지도 않았을뿐 아니라 상견례후 두달만인 6월말 임금협약에
잠정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노사 양측은 상대방이 성실하게 교섭에 임한 덕분이라며 서로를
추켜세웠다.

이 회사 노조 이인영 교섭위원은 "올해는 상견례때부터 노사가 상호존중
하며 협상을 벌이기로 했고 사측 역시 노조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
했다"고 평가했다.

노무계획팀 조순동과장은 "노조가 예전과는 달리 무작정 달라고 조르지
않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특히 노조측의 협상자세는 눈에띄게 달라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교섭장에서 붉은색 머리띠를 동여맨 협상대표들을 볼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이같은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교섭 진행상황을 보고하기 위한 중식집회도 두달동안 단 세차례만 가졌다.

이러한 변화는 금호타이어에만 나타난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올해는 다른사업장에서도 달라진 협상분위기를 쉽게 목격할수 있다.

점심시간이면 요란하게 울려퍼지던 노동가도 올해는 잠잠해졌다.

파업에 돌입한 사업장에서도 쇠파이프는 찾아보기 어렵다.

울산 현대중공업의 이균재 인력개발과장은 노조원들이 붉은띠를 매면
거부감부터 앞선다며 "이같은 모습이 사라진후 대화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교섭장 분위기 역시 과거와는 전혀 딴판이다.

고성과 욕설과 반말은 사라졌고 대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의 이용훈 노사협력부장은 "교섭장의 언어폭행이
결코 교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노조측도 깨달은 것 같다"고 평가
했다.

유인물에서도 원색적 비방이 자취를 감췄다.

1-2년전까지만 해도 노조 유인물에서는 적이라는 용어가 적지 않게 발견
됐으나 요즘 나오는 유인물에는 노조 입장을 설득시키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광주 화천기공의 송웅규위원장은 경제가 어렵고 회사가 휘청거리는데
붉은띠 동여매고 쇠파이프 휘두르며 설쳐대면 결국은 공멸할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측이 제시하는 단체협상요구안도 예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특히 그동안 노사분규 요인으로 작용하던 해고자 복직문제등은 교섭항목에서
대부분 제외시키고 있다.

실제로 울산 현대중공업과 창원 대림자동차노조의 경우 매년 교섭항목에
포함시켰던 해고자복직문제를 올해는 임금협상 대상에서 뺐다.

대신 별도로 협의키로 했다.

임금및 단체협상대상이 아닌 이문제를 포함시켜 놓으면 교섭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노조도 공장이전으로 인한 고용불안문제를 임단협 교섭대상에
넣지 않고 회사측과 별도로 협의, 지난달 18일 고용안정협정을 맺는데 성공
했다.

이러한 분위기 탓인지 올들어서는 협상타결시간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수십, 수백일씩 파업을 벌이며 막대한 생산차질을 빚는 사업장은
아예 찾아볼수 없는 실정이다.

소모적이고 지루한 협상은 노사양측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동부 김화겸 노사협력관은 "전에는 쟁의집중시기에 맞추기 위해 상견례가
끝난후 곧바로 쟁의신고를 내고 파업에 들어가는 사례도 있었으나 올해는
조정기간을 연장하고 파업을 자제하면서 실질적 교섭을 벌이는 모습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김광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