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역이었다.
이 우역의 숙박업무는 주기능이 아니고 부기능의 일부였다.
우역의 이러한 기능은 조선시대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우역 이외의 숙박시설로는 각 주현의 빈객을 접대하는 객사힝
관과 교통상 요지에 설치된 원이 있었다.
우역과 관은 완전히 관용이었던 반면에 원은 반관반민의 성격으로
사민이 관리했다.
그런 점에서 옛날 한국에서의 숙박시설은 공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17세기 후반의 상공업 발달에 따라 보부상을 비롯한 상인들의 활동이
활발해 짐으로써 객주 여각주막 등 사설 숙박업소들이 생겨났다.
객주와 여각은 상인,주막은 일반여행객이 주고객이었다.
개항과 더불어 열강의 한반도 진출이 기도되면서 찾아온 많은
외국인들에게 가장 불편한 것이 숙박시설이었다.
그때 생겨난 것이 여관과 호텔이었다.
1880년대의 일이다.
최초의 호텔은 1888 (고종25) 일본인호리가 인천에 세운 대불호텔이다.
아직 경인선이 개통되기 이전이라 배로 도착한 외국인들이 대개 하루이상
인천에 머물렀기때문에 그곳에 호텔이 가장 먼저 들어섰던 것이다.
미국 최초의 근대적 호텔인 뉴욕의 시티호텔이 1794년 문을 연지 꼭
94년이 지난 때의 일이었다.
1910년에는 독일여인 손택이 서울 정동에 손택호텔을 세운데 이어
1912년엔 부산과 신의주에 국영호텔의 시초인 철도호텔이, 1914년엔
조선호텔 (당시는 철도호텔)이 각기 개설되었다.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 이전까지는 국영 도는 지방자치단체 위탁
경영의 호텔이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어 오다가 관광산업이
국가전략산업화된 70년대부터는 고급관광호텔의 증가, 세계유망호텔과의
체인화에 다른 서구식 대규모 관광호텔 건설등으로 기능의 다양화가
급속도로 실현되어 왔다.
이번에는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 러시아 중고선박을 개조해 만든 지상
4층, 지하1층의 해상호텔이 올연말에 문을 연다고 한다.
한국 호텔사에 상전벽해가 되는 계기를 맡을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