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지옥.

우리는 "지옥"이라는 곳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극한 고통의 상황이
벌어지는 곳으로 알고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는 일상적으로 지옥이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

매년 2백여명의 학생이 입시로인한 심적 고통과 성적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자녀교육을 위한 이민"이라는 기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사교육비를 마련
하기 위해 부모들은 비윤리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상황이 이정도에 이르면 지옥이라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의 교육현장이 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됐는지 한번
되짚어 보자.

거기에는 우리민족의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같은 격변기의 역사가 한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민족의 통치와 전쟁은 전통적인 신분질서를 급격하게 와해시켰고 그
때문에 우리사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신분상승의 가능성이 폭넓게 열리게
됐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과거제도의 전통과 결합하여
교육은 곧 신분상승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레 성립하게 됐다.

또한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욕구는 우리나라 경제력의 한계로는 수용하기
힘든 폭발적인 상태에 이르렀다.

과다 과밀 학급,학생간의 현격한 개인차, 누적되어 가는 학습결손은 물론
내 자식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학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과 잘못된 이기심
으로 교육의 방향은 편리하게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모아지고
그것이 인생에 성공하는 길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정부 정책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 없으며 교육에 대한
우리사회 전반의 인식이 가장 커다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교육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육제도의 개혁,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과감한 투자 등 모두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겠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아직 미완성된 작은 어른이 아닌 개개인의
존재가치와 존엄성을 지닌 완전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은 몇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존재가치가 있다.

어떤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조건없는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독립된 개체로 인정한다.

부모에게 예속된 미완성의 존재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개성과 의지를 지닌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야 한다.

셋째 개인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한다.

인간은 누구나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능력을 인정하고 잠재력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넷째 개인을 선한 존재로 보아야 한다.

인간의 본성을 보는 입장은 다양하다.

그러나 인본주의적 입장에서는 인간을 선한 존재로 보며 그렇게 하면
행동의 동기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게 된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은 모든 인간 관계의 기본이다.

교육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교사가 학생을 존중하고 학생은 스승을 존경하며 교사와 학부모 상호간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아울러 자녀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인정하고
서로 마주 봄으로써 긍정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육개혁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다.

그만큼 정부의 교육정책도 신중하고 중요한 결정이다.

하지만 교육이란 어떤 제도적인 장치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소중함을 아는 건강한 정신이 사회 저변으로 확산될때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성숙한 교육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