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윤황 <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교수 >


고물가 불경기 저성장 산업등 스태그플레이션의 증상으로 어지럽게 점철된
경제난국을 수습하기 위한 장기적 대책의 일환으로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와 안정된 균형하의 경제성장문제가 최근에 이르러 활발하게 거론될
조짐이 엿보인다.

안정된 균형의 개념은 경제성장목표의 달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장의
기회비용인 인플레이션에 의하여 물가안정이 희생되고 전반적으로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되면서도 경제는 오뚜기처럼 균형과 불균형사이를 오가면서
항상 균형으로 수렴하려는 강한 추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불균형과 안정회생은 잠정적이며 안정회생의 총합은 궁극적으로
최소화되든지 아니면 완전히 제거되어 영이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안정된 균형의 개념에 의하면 금융정책은 안정의 기반 위에서
기업들에게 유리한 시장조건과 시장분위기를 조성하여 저축과 투자에 대한
위험이 포함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정부재정정책과의 긴밀한 제도적
상보성을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물가상승을 억제하는등 완전
고용의 달성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금융정책에 대한 이러한일말의 기대는 정치적 현실과 사회정서의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허황된 백일몽으로 돌변할런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한은의 독립성문제가 제기된 경제적 동기인 "안정된 균형하의
경제성장"문제는 단 한번의 논의도 없이 조용히 팽개진 채 정치색이 짙은
"금융감독체제의 제도적 개선"문제로 탈바꿈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제안은 한은금융정책의 목적은 통화신용에 관한 금융조치의 채택과
수행에 국한되고, 자본(저축투자)시장의 안정된 균형을 촉진하고 유지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금융감독기능은 재경원산하의 현행금융통화위원회에서
총리실 산하에 신설되는 금융감독위원회에 이관하의 합동검사제를 도입하여
한은과 함께 금융감독을 실시하게 된다는 점을 골자로 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제안은 경제발전에 관한 원대한 포부를 실현시키기 위한 일대
금융개혁이라기 보다는 정부행정기구의 개편에 지나지 않으며 정치권력에
연연한 관료적 타성의 인상을 풍긴다.

한국은행은 어쩌면 유명무실한 중앙은행으로 영원히 남게 될지도 모르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뽑힌 행정부의 수반, 각료들, 입법부의 국회의원들은 물론
시민들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책임이 없는 한국은행이 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정치권력과 경제적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정치논리에 어긋나는 모험적 처사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러나 법정불환지폐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난제는 지폐 그 자체가 고유한
가치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데서 비롯되며 이 문제의 해결책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그 의견의 수용이
불가피한 것이 특히 한국의 경제적 현실이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외압없는 독자적인 금융정책목표를 수립하고 목표계획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는 합동검사제를 철회하고
조직내에서의 독립성과 금융감독기능을 중앙은행인 한은에 부여하여야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첫째, 법정불환지폐 그 자체는 고유한 가치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인플레는 없다는 정부의 보장과 이 보장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없는 한
시민들은 지폐의 보유량과 사용량을 줄이게 되고 지폐가치의 하락에
대처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을 개인적으로 모색하게 된다.

이러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때문에 은행등 제도권 금융기관의 예금이
대거 빠져나가 경제의 실물부문에 집중적으로 몰리게 된다.

법률적 제한과 법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인플레이션
해지(inflationary hedge)는 부동산투기이다.

만일 정부가 시민들의 강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에 대 응하기 위해서
긴축의지를 단호히 표명하고 통화량의 축소조치를 채택하게 될 경우 점차적인
경기후퇴와 신용부족의 병발은 소위 "지하경제"의 창조를 부추기고 조장하게
된다.

경제의 안정과 번영의 지속은 건전한 화폐(sound money)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둘째, 행정부의 수반을 위시하여 정부각료들과 국회의원들은 다가오는
선거를 항상 의식하기 때문에 불경기와 실업에서 오는 정치적 부담을
단기간내에 신속하게 떨쳐버리기 위해 통화량의 증발과 이자율의 인하 등
땜질식의 단기적 금용조치를 채택하는 사례가 다반사이다.

정부는 때로는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집접적인 책임을 기업들의 생산성저하
또는 소비자들의 비합적인 과소비에 돌리기도 한다.

정부당국의 이러한 행위는 분명히 금융정책의 부재를 함축하며 금융정책의
운영에 대한 정부의 작성문제가 부상하게 된다.

중앙은행인 한은에 독립성과 아울러 금융감독기능을 부여하게 될 경우
성장중심적이고 진보적인 정부재정정책과 통화팽창과 통화수요의 일치및
안정된 균형을 강조하고 통화주의적이고 보수적인 한은금융정책간에 이해
설득 타협 인내를 통해서 상호간의 의견차이를 효과적으로 조율하게 되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전한 협상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불태우는"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