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입행한 나에게 해준 직장선배의 조언이 생각난다.

"직장을 버리든지 가정을 버리든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한곳에
빠져야 성공할 수 있지 둘 다 잘 할려면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다"

한번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한번 해보고 그 결과에 따라 성취감도
느껴보고 패배감도 맛보다 보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둘다 잘하면 되지 뭘그렇게 거창하게 어렵게 생각하나?

하지만 내 사람의 조언으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일상생활에서 "무엇에 빠져본다"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젊은 패기에 은행원의 깨끗한 화이트 칼라의 자존심에
빠져봤고 중년이 되어서는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려는 매너에 빠져봤고
지금은 직장생활의 중견간부로서 은행 관련 업무와 또한 가정생활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 하는데 빠져본다.

그중에 육체적.정신적으로 내가 건강하도록 빠져들도록 한 것이 바로
축구이고 이를 시작한 것이 벌써 40년이 넘었다.

어릴적부터 동네아이들 중에서 제일 잘한다는 소문으로 곪고대장 노릇을
하였고 직장생활 시작과 함께 조치원에서 조기축구회에 가입하면서 축구에
대한 열정은 더욱더 관심이 많았다.

만사 제쳐놓고 축구를 우선으로 생각했고, 몸이 피곤하더라도 축구한다고
하면 왠지 힘이 저절로 생기고 축구를 해야지만 은행업무에도 더욱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 지난 84년에 뜻있는 축구동호인들을 모아
우리은행의 취미교양부인 축구부를 만들었다.

그때 당시 38명이 가입하여 시작한 축구부가 지금은 회원이 모두 110명이
되었고 그중 축구에 빠진 사람들만도 40여명이 된다.

이들과 휴일만 되면 나이를 불문하고 운동장에서 같이 부딛치고 소리치며
호흡을 같이하고 끝나면 아침식사를 즉석에서 해먹으며 마지막으로
목욕탕에서 훌훌 털어버리고 갖은것 없이 똑같은 입장이되어 서로 등을
밀어주며 인간다운 삶을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축구부를 창단한지 벌써 13년.

당일 결혼식을 올리는 동료가 아침에 운동을 하고 장가간다고 꺼떡대며
뛰고 가던 모습, 원정경기에서 에티켓도 없이 상대 선수에게 심하게
태클하여 팔을 부러뜨렸던 동료, 재미교포들의 방문 친선경기,
팬티섭외반이라는 애칭으로 각 영업점의 점주 조기축구회원들과 친선
경기를 갖던 일, 대전시티즌 선수에게 격려의 상(아짜상-꼴대를 맞춘
선수에게 지급하는 상, 쿱상-우리은행 유니폼을 입고 뛰는날 꼴을 넣는
선수에게 지급하는 상)을 주던 일 등등....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도 만나는 사람마다 "축구는 아직도 열심히
하시죠?"하는 인사말에 나 자신을 아직도 젊은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아 정신.육체가 아직도 젊게 보인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