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서울 대치동 삼성SDS빌딩 8층에서는 PC교실이 열린다.

중.고생 정도의 남녀학생 30여명이 눈을 반짝이며 컴퓨터 앞에 붙어 있다.

떠들썩하게 마련인 10대들의 교실.

하지만 이곳에는 의외의 정적이 감돈다.

3시간 내내 떠드는 사람이라곤 선생님 한명.

그 곁에는 부지런히 두 손을 움직이는 또 한명의 선생님이 있다.

이곳이 SDS의 청각장애인 PC교육 봉사동아리인 온누리 의 자원봉사
현장이다.

대상은 서울 애화학교 청각장애 학생들.

그날의 교육을 맡은 강사 한명과 대여섯명의 보조강사들이 수화통역사인
애화학교 선생님과 한팀을 이뤄 아이들에게 매주 3시간씩 윈도 PC통신
인터넷 등을 가르치고 있다.

온누리가 뭉친 것은 지난 4월.

핵심 멤버인 김주환(28.정보전략연구팀)씨는 "누가 그랬지요.

장애인이 정붙이고 살만한 유일한 곳이 컴퓨터 속의 세상이라고.

그래서 우선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PC를 가르치기로 했습니다"며 출발
동기를 밝힌다.

눈으로 더욱 깊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아이들.

그들에게 사이버 공간은 별천지다.

온라인 쇼핑, PC뱅킹, 온라인 병원...

수화를 모르는 친구들과도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는 곳.

아이들은 PC통신의 세계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새로운 의사소통법에 눈뜬 아이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은 봉사자들에겐
더없이 값진 강의료였다.

온누리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회원이 출발 당시 9명에서 지금은 80명으로
불어났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언어가 다른데서 오는 표현의 제약.

진행강사인 강정아(24.고객지원팀)씨는 "알고 있는 것을 뜻대로 전달하지
못할 때가 제일 안타깝다"고 털어놓는다.

컴퓨터 용어를 수화로 풀어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래서 몇몇 팀원들은 아예 수화를 직접 배우기로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정작 아이들이 PC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

학교에조차 PC시설이 갖춰져 있질 않다.

정부나 관련단체들의 지원이 아쉽기만 하다.

그렇다고 교육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쳐다보며 좌절하느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게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PC교육과 함께 올가을께에 토털 커뮤니케이션이란 청각 장애인을
위한 전용 홈페이지를 열 계획이라고.

장애가 제거된 사이버 공간 온누리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은 조금씩 영글어
가고 있다.

< 김혜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