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의 1차 매각입찰 유찰이후 삼성그룹이 "한보인수"에 대해 미묘한
태도 변화를 보여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태도변화가 처음으로 감지된 것은 삼성그룹 고위관계자가 한보철강이
유찰되던 7일 "한보철강은 현대나 포철이 인수해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두 회사가 끝까지 마다할 경우 국가경제를 위해 삼성이 나설 수도 있다"고
밝히면서 부터.

이같은 발언이 파문을 일으킨 8일에도 삼성은 "원칙적인 얘기를 한 것"
이라고 해명하면서도 한보철강 인수가능성에 대해선 강력히 부인하지 않았다.

그간 한보철강 인수불가 입장을 고수해왔던 태도에 뭔가 변화가 일고
있다는 관측을 낳기에 충분한 움직임이다.

삼성의 이같은 변화에 대해 업계에선 설왕설래가 많다.

크게 보면 세가지 방향에서 해석을 하고 있다.

첫째 삼성이 한보철강 인수 추진쪽으로 방향을 완전히 선회했다는
추측이다.

삼성은 그동안 한보철강이란 거대 부실덩어리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공개입찰이 유찰돼 한보철강의 가치가 헐값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해지자 인수 검토쪽으로 기울었다는 것.

삼성그룹 관계자는 "아무도 인수하려들지 않아 거져 준다면 삼성이
못가질 이유도 없지 않느냐"며 "삼성은 자동차 조선 가전 등 계열사에서
철강 수요도 많다"고 말해 이런 관측에 설득력을 더했다.

둘째 삼성이 그저 "바람잡이"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설도 있다.

실제는 인수할 의사는 없으면서 한보철강의 값을 올리기 위해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다는 것.

이런 바람잡이 역할엔 정부와 채권은행단의 지원요청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나돈다.

이는 지난주말께 정부와 채권은행단의 요청 때문에 삼성이 한보철강
입찰에 들러리로 응찰할 것이란 소문이 철강업계에 퍼졌었던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또 설령 정부의 요청이 없었더라도 삼성 입장에선 현대의 인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견제구를 던졌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런 가능성 때문에 현대측은 불쾌하다는 표정이다.

마지막으론 원론적인 얘기가 과대 포장됐다는 것이다.

삼성으로선 현대나 포철이 한보철강을 인수할 것으로 보고 "바라지는
않지만 만약 최악의 경우엔 국민경제를 위해 삼성이 검토할 수도 있다"는
면피성 발언을 한 것이 지나치게 확대해석 됐다는 분석이다.

삼성은 자동차 사업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보철강을 인수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어쨌든 업계는 삼성의 일거수 일투족에 안테나를 고추 세우고 있다.

한보철강을 정말 인수할 의사가 있든 없든간에 삼성그룹의 태도는
한보철강의 향배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특히 채권은행단과 현대그룹 포철등 한보철강을 둘러싼 직간접
이해당사자들은 예상치 않았던 삼성이란 돌발변수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향후 상황진전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 한보철강의 새주인 찾기 과정에 삼성이 핵심변수로 작용할지 여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차병석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