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칼럼] '사람'이 나올 수 있는 무대..<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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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바람은 화제다.
과연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불과 얼마전만해도
용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던 대표적인 존재에서 일약 선두군으로
발돋움했다는 것 만으로도 그렇다.
토지 블레어 영국 노동당 당수(44)의 집권이나 윌리엄 헤이그(36)의
보수당 당수 당선은 우리 풍토와는 걸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온 나이든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40대인 그의 선전은 자칫 충격적이기도 하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해석도 구구하기 만하다.
되살아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비슷한 외모의 그에게
보탬이 됐다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전.노 두 대통령의 엄청난 축재, 그리고 한보사건 및 대선자금시비에 겹쳐
경제가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면서 박대통령이 더욱 돋보이는 분위기가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고 이인제바람의 원인을 "박정희 향수"에서 찾으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두 사람은 정치성향도 성장배경도 판이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인제바람은 과거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번
경선과정의 부산물이다.
집권당 대통령후보가 글자그대로 경선을 통해 결정되는 것도 처음이지만
과거에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던 경선후보 TV토론이 몇차례나 있었다는
점은 이번 경선의 두드러진 특색이다.
바로 그런 과정을 거쳐 예상밖의 사람이 등장할 수도, 또 "허상"의
진면목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은 신선하다.
"사람이 없다"는 인식처럼 잘못된 것은 없다.
능력이 있는 자는 이미지가 나쁘고 이미지가 괜찮은 사람은 능력이
의심스럽다는 인식, 그것은 유신과 군사 정부라는 정통성.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오랜 기간때문에 "대중이 갖는 편견"이 돼왔다.
유신때 장관을 했다는 이유때문에 또 반대로 지금까지 책임있는 자리를
경험한 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제처놓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온통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게 된 것은 정말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등장할 수 있는 "무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번 신한국당 경선과정은 그런 시각에서 우리 모두 음미할 필요가 있다.
미꾸라지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던 존재들이 서로 잘났다고
나섰던 가소로움, 그래서 왠놈의 용이 이렇게 많으냐고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었던 그 과정이 미꾸라지를 용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무대역활을 한다는
점을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타는 무대가 있어야 한다면, 스타가 없다는 말은 무대가 없기 때문이란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 논리로 "사람이 없다"고 푸념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나올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성립한다.
미국에서 예비선거가 왜 필요한 지, 그 기능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봐야 할
때가 됐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정당이 특정인의 사유물이어서는 불가능하다.
당권을 가진자가 밀실에서 선거에 내세울 후보를 제멋대로 정할 수 있는
풍토에서는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마련이다.
국회의원선거에서도 공당은 미국식 예비선거나 이번과 같은 경선과정을
거치도록 제도화하는 것도 검토해볼 과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꽤나 팔렸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또는 사이고 다카모리 시대의 일본 역사소설을 보면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멋있는데, 왜 우리 역사소설은 그렇지 못하냐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기준이 저네보다 우리가 훨씬 가혹하기 때문일
텐데 그 원인이 뭔지,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결론은 이렇다.
등장하기까지의 과정, 그 동력이 다르기 때문에 후일 대중으로부터의
평가기준도 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왕의 총애 등 위로부터의 시혜에 바탕을 둔 사람과 자력으로 밑에서부터
쌓아간 사람에 대해서는 대중이 느끼는 감정이 다르게 마련인데다, 위로
부터의 시혜적 행운이 거의 일관된 "사람등장"의 방식이었던 사회였기
때문에 결국 큰 사람도 그만큼 나오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제 대통령은 물론 국회의원 선출방식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글자그대로 국민의 선택권이 보장되려면, 또 그 자질에 대한 충분한 검증
절차를 거치기 위해서도 우리 현실에 맞는 예비선거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고질적인 패거리정치의 폐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도 이는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왜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지, 왜 항상 그 얼굴이 그 얼굴이어야
하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생각해볼 일이다.
무대가 있어야 새로운 스타가 나올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9일자).
과연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불과 얼마전만해도
용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던 대표적인 존재에서 일약 선두군으로
발돋움했다는 것 만으로도 그렇다.
토지 블레어 영국 노동당 당수(44)의 집권이나 윌리엄 헤이그(36)의
보수당 당수 당선은 우리 풍토와는 걸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온 나이든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40대인 그의 선전은 자칫 충격적이기도 하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해석도 구구하기 만하다.
되살아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비슷한 외모의 그에게
보탬이 됐다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전.노 두 대통령의 엄청난 축재, 그리고 한보사건 및 대선자금시비에 겹쳐
경제가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면서 박대통령이 더욱 돋보이는 분위기가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고 이인제바람의 원인을 "박정희 향수"에서 찾으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두 사람은 정치성향도 성장배경도 판이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인제바람은 과거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번
경선과정의 부산물이다.
집권당 대통령후보가 글자그대로 경선을 통해 결정되는 것도 처음이지만
과거에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던 경선후보 TV토론이 몇차례나 있었다는
점은 이번 경선의 두드러진 특색이다.
바로 그런 과정을 거쳐 예상밖의 사람이 등장할 수도, 또 "허상"의
진면목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은 신선하다.
"사람이 없다"는 인식처럼 잘못된 것은 없다.
능력이 있는 자는 이미지가 나쁘고 이미지가 괜찮은 사람은 능력이
의심스럽다는 인식, 그것은 유신과 군사 정부라는 정통성.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오랜 기간때문에 "대중이 갖는 편견"이 돼왔다.
유신때 장관을 했다는 이유때문에 또 반대로 지금까지 책임있는 자리를
경험한 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제처놓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온통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게 된 것은 정말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등장할 수 있는 "무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번 신한국당 경선과정은 그런 시각에서 우리 모두 음미할 필요가 있다.
미꾸라지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던 존재들이 서로 잘났다고
나섰던 가소로움, 그래서 왠놈의 용이 이렇게 많으냐고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었던 그 과정이 미꾸라지를 용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무대역활을 한다는
점을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타는 무대가 있어야 한다면, 스타가 없다는 말은 무대가 없기 때문이란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 논리로 "사람이 없다"고 푸념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나올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성립한다.
미국에서 예비선거가 왜 필요한 지, 그 기능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봐야 할
때가 됐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정당이 특정인의 사유물이어서는 불가능하다.
당권을 가진자가 밀실에서 선거에 내세울 후보를 제멋대로 정할 수 있는
풍토에서는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마련이다.
국회의원선거에서도 공당은 미국식 예비선거나 이번과 같은 경선과정을
거치도록 제도화하는 것도 검토해볼 과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꽤나 팔렸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또는 사이고 다카모리 시대의 일본 역사소설을 보면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멋있는데, 왜 우리 역사소설은 그렇지 못하냐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기준이 저네보다 우리가 훨씬 가혹하기 때문일
텐데 그 원인이 뭔지,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결론은 이렇다.
등장하기까지의 과정, 그 동력이 다르기 때문에 후일 대중으로부터의
평가기준도 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왕의 총애 등 위로부터의 시혜에 바탕을 둔 사람과 자력으로 밑에서부터
쌓아간 사람에 대해서는 대중이 느끼는 감정이 다르게 마련인데다, 위로
부터의 시혜적 행운이 거의 일관된 "사람등장"의 방식이었던 사회였기
때문에 결국 큰 사람도 그만큼 나오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제 대통령은 물론 국회의원 선출방식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글자그대로 국민의 선택권이 보장되려면, 또 그 자질에 대한 충분한 검증
절차를 거치기 위해서도 우리 현실에 맞는 예비선거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고질적인 패거리정치의 폐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도 이는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왜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지, 왜 항상 그 얼굴이 그 얼굴이어야
하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생각해볼 일이다.
무대가 있어야 새로운 스타가 나올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