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지난 9일 세상을 마감한 김정태 부산
태화쇼핑사장의 애닯은 죽음은 대그룹들의 시장잠식으로 설 땅을 잃고 있는
지방유통업체들의 암울한 처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주주, 종업원들에 대한 경영자의 책임에 비추어 볼 때 과연
죽음만이 옳은 선택이었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수조원의 은행돈을 떡주무르듯 마음대로 끌어다 쓴후 국가경제에
크나큰 환부를 남긴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의 최근 행태는 고김사장의
죽음과 너무도 판이한 대조를 이룬다.

김사장은 부산지역의 대표적 향토백화점을 세우고 키워왔지만 대자본들의
잇단 진출로 유통시장이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돌변한 최근 수년간 수없이
가슴앓이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전국적인 브랜드인지도와 뛰어난 집객력을 앞세운 대형유통업체들의 공세
앞에서 생존의 길을 필사적으로 모색했으나 세상인심이 그의 정성과 노력을
몰라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기업인이면서도 정총회장은 경영권회복을 염두에 둔 행동을
재개하고 있어 세상여론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온나라를 부정과 비리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국가이미지에까지 먹칠을 한
한보사건의 장본인이 후유증이 채가시지도 않은 이 시점에 경영권회복
운운하는 것은 일반여론에 비추어 볼 때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다.

피땀흘려 일으킨 기업이 부도를 냈다고 목숨을 끊어 괴로움을 잊으려 한
기업인과 온갖 비난, 욕설을 뒤집어쓴 상태에서도 연고권을 놓지 않으려는
또 다른 한명의 기업인.

너무도 다른 두사람의 행태에서 오늘날 우리사회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윤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반문해 본다.

양승득 < 산업1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