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시작된 동남아 통화지진이 어디까지 번질까.

진앙지인 방콕경제는 이미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에도 지진피해가 보고되고 있다.

여진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등으로 계속 번지고 있다.

산업은행 방콕사무소에 초비상이 걸려있다.

오는 10월 지점승격을 앞두고 업무용컴퓨터를 구입하기로 했으나 판매자
쪽에서 값을 20% 올려주지 않으면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해온 탓이다.

오재형 사무소장은 "지점 오픈일자가 촉박하고 다른 회사와 재계약하기도
여의치 않아 인상폭을 줄이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며 바트화 폭락의
고통을 호소했다.

방콕시내의 기름값도 오르기 시작했다.

가전제품을 비롯한 공산품값도 꿈틀대고 있다.

정부는 도큐 이세탄등 주요 백화점에 대해 "기존 재고품을 갖고 폭리를
취할 경우 7년이하의 징역에 처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고 있다.

방콕의 중심역인 화람퐁역에서 만난 한 시민은 "언제 어느제품값이 오를지
매일매일 가슴을 졸인다"며 투덜댔다.

정부가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4%대에서 7%대로 높여 잡았지만 민간
경제연구소쪽에선 10%를 넘어설 것이라고 불안한 눈초리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외채를 들여와 시설투자를 많이한 석유화학업계등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바트화 폭락의 짙은 먹구름은 장마전선을 타고 국경을 넘어 필리핀을 강타
하고 있다.

파장은 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와 인도네시아의 루피화로 확산되며 안정권을
보이던 싱가포르달러에까지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바트에서 루피로 이어지는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통화위기는 국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임성균 주태국한국대사관 재경관은 "태국등 동남아시에 진출한 기업중
삼성전자처럼 현지 내수판매 비중이 높은 회사들은 이미 상당한 손해를 입고
있다.

바트화로 요금을 받고 본사송금은 달러로 해야 하는 대한항공도 마찬가지다.

현지통화 가치가 10-20% 떨어진 만큼 수출비중이 높은 이지역에서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종합상사도 초비상"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지언론과 외신은 "바트는 시작일 뿐이다.

페소도 이미 무릎을 꿇었고 링기트가 제2의 바트가 될 것이다.

종착역은 루피"라는 보도를 내고 있다.

조지 소로스로 대표되는 국제단기투기성자금(핫머니)이 공격대상을 바꿔
가며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달러당 28바트선에서 안정세를 보이는 듯하던 바트화는 32-35바트까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방콕을 중심으로 동남에 덮여 있는 먹구름이 언제 걷힐지에 세계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 방콕=홍찬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