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중인 내게 노인이 시간을 묻길래 한국식으로 "6시 15분전"이라고
했더니, 그는 "이제 그런 영어는 안써요.

숫자만 나오는 시계에 몇분 전이라는 게 있을리 없지요"라고 말했다"

소설가 이윤기(50)씨의 산문집 "에세이 온 아메리카" (월간에세이)에
나오는 대목이다.

모든 것이 숫자로 표시되는 디지털시대에 그는 "기둥이 습해지는 걸 보고
비가 올 것을 짐작하던" 시대를 그리워한다.

시인 이생진(68)씨의 첫 산문집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
(작가정신)에도 잃어버린 순수와 자연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중견소설가와 노시인의 잠언은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에세이 온 아메리카"는 91년 미시건주립대 초빙연구원으로 떠났다
지난해 귀국한 이씨의 우리문화 거꾸로 보기.

그는 옥수수 재배시험에 영향을 주지 말라는 땅 기증자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지하에 만든 일리노이대학 도서관을 보면서 토지용도를 둘러싸고
기증자와 대학이 시비를 벌이는 우리의 현실을 슬퍼한다.

한 아랍인학자로부터 "어째서 한국인의 일부는 공산주의를 수출한 나라
사람들보다 더 공산주의적이고, 기독교를 전해준 사람들보다 더 배타적이며,
흑인노예를 부리던 사람들보다 더 인종차별적이냐"는 지적을 받고 할 말을
잃었던 얘기도 소개돼 있다.

그는 자기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를 걱정하며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서는 "저스트 디퍼런트 (단지
다를 뿐)"라는 다민족다문화 정신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너무 많은 한국인들이 오버페이스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앞짧은 오기와 단칼 승부의 과잉의욕을 자제하고 "정신의 거품"을
걷어낼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발견한 희망은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문법"이다.

"아파트"를 "엄마트"로 부르고 오래 앉았다 일어서며 "다리가 사이다를
마셨다", 혹은 자동차 지붕을 "차붕"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은유에서
자유로운 "생각의 거울"을 만나기 때문이다.

이생진씨의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에는 노시인이 터득한 삶의
지혜가 해안선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잘알려진 그는 풍랑으로 무인도에 갇히거나
간첩, 부동산투기업자로 오해받으면서 섬을 떠돌았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어디에나 바다와 별과 시가 있다.

도요새와 바다직박구리새가 기다리는 비안도 말도, 가시덛힌 큰 물고기가
살았다는 비양도, 외로운 등대지기가 사는 울릉도 태하....

마라도의 잔디밭이나 가파도의 갯바위 위에 앉아 "인생은 섬을 향한
항해이자 자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섬에 가거든 바람을 이해하라. 산에서는 나무가 왕이지만 섬에서는
바람이 왕이다.

바람을 잘 알아라. 바람의 지혜를 인정해야 네 마음의 배도 순항할 수
있다"

소매물도의 소나무숲이나 몽산포의 모래밭을 지날 때는 시 한편을
얻기도 한다.

"곤충의 일생은 짧습니다/그런데 도중에 살기 싫어지면 죽어지내는/
가사가 있습니다/나는 그것이 제일 부럽습니다" (편리한 죽음, 곤충기)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