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 그룹들이 "차입경영을 근절하자"는 정부의 방침에 적극 호응,
앞다퉈 재무구조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규제를 받기 전에 미리 부채를 떨어내 안정적이고 건실한 재무구조를
만들겠다는 자발적인 노력을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현대그룹이 보유자산 2조원어치를 매각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1조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한데 이어 삼성 LG 대우 등
주요그룹들도 <>부동산 매각 <>한계사업 철수 <>과다 부채 정리 <>자기자본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재무구조 개선안을 선보이고 있다.

1년간 계속된 경기하강의 여파로 벌이도 시원찮은데 빚부터 갚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그룹의 자구 노력 계획을 보는 재계 관계자들의 시각은
다소 "자조적"이다.

여건이 조성돼있지 않은 상황에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계획을 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관계자들이 이렇게 자조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이렇다.

우선 재무구조 개선이 지금 이 시점에서 경영의 최우선 순위가 절대로 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기하강으로 인해 위축된 투자심리를 회복하고 수출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인 상황에서 자금수요가 많은 기업까지도 대출금을 갚아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현실인식이 다른 정부가 시키는대로 할 수 없이 해야하니 시늉은 하지만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재무구조 개선 자체가 어려운 기업까지 자발적인 부채줄이기에
나서게 하는 현실이 재계를 더욱 자조적으로 만들고 있다.

유상증자등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확대, 해외금융 이용 등 계획은
이들 그룹엔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상증자 요건이 "최근 3년간 주당 평균배당금이 4백원 이상인 회사"로
제한돼있는데 몇년째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그룹의 계획은 실현될
수가 없다.

해외자금조달의 경우는 더 어렵다.

대외신용도가 낮아 꿀래야 꿀 데가 없다.

자금사정이 비교적 괜찮은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계획도 실현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부동산매각이나 부실계열사 및 한계사업정리 등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재무안정도를 높이려고 해도 제도적 걸림돌이 너무 많아서다.

부실 계열사를 정리하기 위해 계열사간 통폐합을 추진할 경우를 보자.

피합병 업체는 매각자로서 양도차익의 52.8%를 세금으로 납부해야한다.

인수하는 측에서는 매입가객의 29%를 취득세 및 부담금으로 내야한다.

그룹으로선 계열사 통폐합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은 거의 없어지는
셈이다.

부동산 매각의 경우도 현실적인 제약이 있기는 매 한가지다.

기업부동산의 경우는 대부분 기업이 사줘야 하는데 현시점에선 매수에
나설 기업을 찾기가 더 어렵다.

억지로 정부가 계획 실천을 종용하면 싼 값으로 처분해 자산가치의 감소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현실적인 여건이 이렇게 전혀 조성돼있지 않은 현실에서 기업들의 재무구조
개선 노력을 한계를 갖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용환 이사는 "기업들이 질경영을 표방하면서 대내외
신용도를 높이기 위한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는 이런 노력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해주는 선에서
개입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자영.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