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얼굴을 지닌 야누스적 문화공간 인사동.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며 동.서양의 문화가 동거하는 곳.

이곳의 문화지도가 바뀌고 있다.

인사동이 신세대에게 점령당한지는 오래다.

일요일 "차없는 거리"로 지정되고 문화장터가 들어선 후로는 더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길가의 외국 공예점, 장신구를 파는 노점상, 거리의 화가들이 늘어가고
신세대풍의 카페, 신세대를 위한 주점들도 많이 불어났다.

인사동에서 풍기는 젊은이들의 에너지는 신촌이나 대학로 압구정동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힙합바지에 노란물을 들인 패션도 보기 힘들고 "폭주뛰는"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따금씩 휙 하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외래문화(?)지역을 통과해
자신들의 문화공간쪽으로 빠져 나가는 젊은이들만 보일 뿐.

"전통찻집에서 차마시고 화랑에서 그림구경하고 외국골동품 전문점을
돌다가 밤이 되면 주점에서 술마시고..."

인사동을 즐겨 찾는다는 상명대 무역학과 이민규(20)군이 이곳 문화를
즐기는 코스다.

"이곳에 오면 꾸밀 필요없고 맞출 필요없고 그냥 편하게 즐기기만 하면
돼요"

일행인 정모(23)양도 인사동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덧붙인다.

밀러나 버드와이저보다는 동동주를 찾고 헤이즐넛보다는 둥글레차를 즐기는
젊은이들.

새로움을 추구하는 신세대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는 걸까.

인사동의 밤풍경은 또다른 분위기를 지닌다.

화려한 네온사인 대신 종로쪽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포장마차, 점집, 노란
백열등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인사동은 그리 향락적이지 않다.

귀를 찢을듯한 음악소리에 몸을 내맡기는 신세대 놀이문화와는 다른
여유로움이 이곳에는 넘친다.

"하늘아래 모퉁이" "꽃을 던지고 싶다" "모깃불에 달 끄스릴라" "오, 자네
왔는가" "학교종이 땡땡땡"등 예쁜 이름을 가진 가페와 안쪽 골목에 늘어선
주점들에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단골 아저씨(?)들이 자리가 없어 발걸음을 돌리는 풍경은 인사동 문화의
주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인사동은 아직까지 우리의 혼이 숨쉬고 있는 곳입니다"

민속주점 "깔아놓은 멍석 놀고간들 어떠하리"의 주인 강길중씨는 "인사동을
자주 찾고 이곳의 문화에 압도당한 젊은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며 인사동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하지만 "인사동 문화의 속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겉핥기 식으로 먹고
마시는 데만 머무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자정을 넘기면 여느곳과나 다름없는 젊은이들만의 해방공간으로 돌변한다.

주점이나 찻집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젊은 남녀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새로운 밤을 장식한다.

차분하던 거리에도 어느새 활기(?)가 느껴진다.

서로 몸을 부둥켜안고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젊은이들도 하나둘씩
늘어간다.

하지만 이곳은 스쳐 지나가는 공간일뿐.

주체할수 없는 젊음을 발산하기 위해 신촌이나 이태원으로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에 아쉬움이 더해진다.

인사동을 찾는 모든 젊은이들에게서 전통문화에 대한 진지한 체험을 기대
하는 것은 무리다.

대부분은 이곳의 분위기를 가볍게 훑어보는 정도이며 결국은 놀고 먹고
즐기는 소비문화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인사동의 문화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이해없이 인사동의 이색적인 분위기만
을 또하나의 새로움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외래문화인양 흡수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 양준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