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마다 차가 빽빽이 들어찼다.

차 사이를 빠져 걷기조차 힘들 정도다.

그래서 하루종일 주차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경적소리 욕설소리...

차 1천만대 돌파라는 빛 뒤에는 우울한 그림자가 있다.

바로 "주차전쟁".

안상기씨(관악구 신림동.32)는 며칠전 황당한 일을 당했다.

아침 출근을 위해 나가보니 차 타이어가 예리한 흉기에 의해 펑크나 있는
것.

골목길 귀퉁이에 주차한 게 탈이었다.

차량에 연락처까지 남겨놨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런 "봉변"은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얘기거리도 아니다.

주차전쟁터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아귀다툼"에 익숙해졌다고나 할까.

6월말 현재 등록된 서울차량대수는 2백20만대.

반면 주차공간은 골목길 이면도로까지 다 합해도 1백70만대다.

밤마다 50여만대가 주차공간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는 얘기다.

3명에 1명꼴로 주차문제로 이웃과 시비를 벌인 적이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나마 주차사정이 좋다는 아파트단지도 요즘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차량이 급속이 늘어난 탓이다.

박민수씨(노원구 하계동.35)는 "늦게 퇴근하게 되면 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단지 밖 도로에 불법주차한다"고 말한다.

주차전쟁은 동네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공공기관 백화점 시장 대학 등 모든 곳이 전쟁터다.

조그만 틈만 보이면 어디든 차량이 비집고 들어간다.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2만4천여대가 주차금지구역에서 적발된다.

휴일이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자동차 1천만대와 걸맞지 않는 주차질서.

그 결과는 혹독하다.

도로기능 상실과 차량속도 둔화로 연간 수조원이 거리에 뿌려지고 있다.

계산되지 않은 피해는 더 크다.

보행자는 인도위에 주.정차한 차량사이를 곡예하듯 지그재그로 돌아가야
한다.

어린이들은 놀이터를 차에 뺏겼다.

집주변에 설치한 주차장애물은 이웃간의 정마저 가로막고 있다.

원하는 곳 바로 앞까지 가야만 속이 풀리는 주차문화.

또한 자기집 가까이 끌고 가지않으면 차를 세울 수 없을 만큼 공공주차
시설이 절대 부족한 우리 현실은 자동차문화의 후진성을 잘 나타낸다.

최종목적지와 주차한 장소까지의 거리가 3백80m라는 런던이나 보스턴
(2백73m)과 우리의 모습을 곰곰히 비교해 볼 때다.

<김준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