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입사지원서가 아니라 사진첩이잖아?"

올해 초 금강기획의 신입사원 서류접수처.

우편으로 접수된 입사지원서를 살펴보던 담당 직원은 눈에 띄는
"지원서"를 발견했다.

예쁜 포장지로 정성스럽게 꾸며진 한 권의 사진첩.

그 속에는 젖먹이 시절부터 어엿한 숙녀로 성장하기까지 한 여성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사진들이 차곡차곡 꽂혀 있었다.

"저에겐 소중한 사진들이니 회사에 들어가 꼭 되돌려 받고 싶다"는 애교
섞인 당부의 말과 함께.

특히 어릴적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에는 일찍부터
광고인으로서의 끼가 가득했었다는 설명까지 붙어있었다.

이 별난 지원서의 주인공 이나영(25)씨는 지금 그녀의 희망대로 이 회사의
카피라이터가 되는 데 성공했다.

사상 최대의 취업난이라는 살벌한 용어까지 등장한 요즘.

이제 취업준비생들은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묘수를 찾고 있다.

천편일률적이던 입사지원서도 이젠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자신을 연극의 주인공으로 가정하고 한 편의 희곡을 써 온 사람, 미래에
성공한 자신이 기자와 만나 인터뷰 하듯이 지원서를 작성한 사람, 자기
소개서를 인터넷 홈페이지처럼 꾸민 사람, 친구 2백명의 추천서를 첨부한
입사지원서 등.

내용만이 아니다.

검은 펜으로 단정하게 써내려간 지원서는 이제 차라리 촌스럽다.

스캐너 컬러프린터 등 첨단장비를 동원, 한껏 멋을 낸 입사지원서들이
줄을 잇고 있다.

형식과 문체의 파괴가 입사지원서에도 이어진 모습이다.

면접장도 마찬가지.

지난해 건설회사에 지원한 한 응시자는 면접장에서 직접 제작해온
미니어처 건물을 들고 멋지게 프리젠테이션을 해 면접관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올해초 무역회사인 S사의 지원자 중에는 아예 자신을 상품으로 놓고
빠듯해진 채용시장에서 왜 자신을 구매해야만 하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한
입사지원서를 제출한 사람도 있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입사를 희망하는 회사의 사업성격을 미리 파악해 회사가 원하는 능력과
자질을 선전하는 지원자는 노력한 만큼의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게
이 회사 인사담당자의 설명이다.

선경건설 인력관리팀의 문원규씨는 "기업이 모범생보다는 패기와 창의성을
겸비한 적극적인 인재를 선호하는 추세"라며 "최근 신세대 지원자들의
자유분방한 성격이 구직 시장에서도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튀는 개성과 끼가 입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말 제일기획에는 사장을 비롯한 1천여명의 전 임직원 앞으로
일제히 한 장의 엽서가 날아들었다.

품목명 : 이<><>,
출고일 : 72년 10월,
최종검사처 : <><>여대,
대인관계 : 2~3일 밤은 꼬박 샐 수 있는 강인한 체력 등의 자기 소개가
적힌 엽서였다.

이 지원자는 면접관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입사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아이디어와 성의는 높이 살만 하지만 입사에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하다고 전형 과정에서 회사측이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직장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지식과 품성.

기교란 튼튼한 기초 위에서나 빛을 발하는 법이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취업준비생들.

하지만 총탄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정글같은 "취업전선"에서 그들은
불안해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머리를 짜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새로운 구직 풍속도가 우리들에게 그리 유쾌하게 다가오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 유병연.박해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