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매일 수백, 수만개의 간판을 본다.

그리고 그 어지러움과 더러움에 이제 면역이 된듯,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도 이 도시의 얼룩을 닦아내고 있다.

"날으는 곰"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지저분한 간판을 청소해 주는
전문업체다.

청소전문회사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쟈니킹, 서비스마스터등 밀려들어오는
외국의 청소전문업체와 맞서고 있는 이들이다.

그야말로 틈새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사장은 유용웅.

올해 나이 31.

대학시절에는 "5월 문학상"에 당선된 적이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이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파이론이란 정치광고대행사에 몸담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광고는 한철장사.

지난 96년 총선이후 할일없이 고향에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을때
문득 선배로부터 온 제안.

"간판한번 닦아보지 그래"

이게 웬 말인가.

한때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젊음과 인생을 바치리라 다짐했던 그에게는
참으로 황당한 제안이었다.

심각한 고민끝에 진주에서 작은 빵집을 하는 아버님께 질문을 했다.

얼마정도면 간판 닦으시겠느냐고.

아버님은 3만원정도면 한번 닦아볼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오신 아버님께서 간판 닦는데 3만원을 선뜻
내놓으시겠다니.

유씨의 머리는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도시의 상점들은 약 5만~10만원을 달라고 해도 닦지 않을까.

서울의 간판만해도 몇개인가.

야 이거 말돼는데.

그리고 그는 곧장 실행에 옮길 결심을 하고 그의 평생 동지가 될 두명의
후배와 거사를 결행한다.

초기 자본금은 3천만원.

그러나 뜻밖의 일들이 발생한다.

당연히 세제로 씻어내고 대충 물뿌리면 간판의 때가 지워질줄 알았다.

그러나 간판의 때는 지질 않는다.

게다가 장사하는 곳에서 계속 물뿌리고 있을수는 없지 않은가.

이때부터 청계천을 헤매면서 세제를 구했다.

다양한 연구끝에 세제 합성에 성공해 지금은 물을 쓰지 않고 작업을 한다.

물론 환경대학원에 의뢰해 이 세제가 인체에 해로운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지도 확인해 보았다.

"날으는 곰"이란 브랜드명은 선배들이 만들어 주었다.

별명이 곰인 유사장이 한번 날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다.

현재 본사의 월매출액은 약 3천만원 정도다.

전라남북도를 제외한 전국에 24개의 체인점이 설치돼 있다.

어떤 이들은 사장이 마음에 들어 쾌히 지점을 개설하기도 한다.

걱정되는 일이다.

사업이 잘안되면 그 수많은 원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러나 확신은 있습니다.

가맹점의 사장들이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입니다.

젊다는 것과 일에 대한 성의, 그리고 철저한 프로정신, 이것이 우리의
밑천이기 때문이지요"

유사장은 자신있게 이 사업의 미래를 점친다.

창업을 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간판관련 토털서비스업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동시에 한국의 어지러운 간판문화를 한번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힌다.

(02)3461-0072

< 김용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