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추구권의 침해냐,전통관습의 유지냐를 놓고 여성단체와 유림들이
벌여온 격렬한 논란이 동성동본 금혼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일단락됐다.

이로써 조선조이래 4백년 가까이 지속돼온 사회적 금기는 최소한 법적인
효력을 상실했으며 현재 6만여쌍으로 추산되는 동성동본 부부들은 이날부터
자녀호족, 배우자들의 의료보험, 가족수당, 세금공제 등의 정상적인
혜택을 받게됐다.

재판부의 이날 결정은 금혼조항의 이념적 기반이 됐던 유교사상의 족벌적
가부장적 사회체제가 더이상 유효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또 핵가족화와 여성활동인구의 증가는 곧 금지혼의 범위를 법적으로
규제할 기반 자체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결혼의 시기와 대상은 개인의 윤리와 도덕관념에 맡길 문제이며
국가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이 가능하도록 그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결론이었다.

일례로 김해 김씨만도 3백80만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동성동본이라는 것이
금혼의 기준으로 그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일각에서 금혼의 합리적 명분으로 제기했던 유전학적인 불상사에
대해서는 부계와 모계 각 8촌간의 결혼을 무효로 하는 근친혼 금지
규정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오후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동성동본 혼인반대를 외치는
유림단체의 시위는 법이냐 가문이냐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갈등이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