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코치의 얼굴에 출렁거리는 호기심이 나타나자 용기를 얻은 미아는
내친 김에 만용을 부려본다.

"오빠, 나는 아직 스튜디오가 없어요.

대학에 가면 엄마가 스튜디오도 만들어주신다고 했어요.

지금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팔당에 있는 우리집 별장을 하루 쓰면
되겠어요"

그러면서 미아는 상기된 얼굴에 꽃같이 향기롭고 매혹적인 미소를 띤다.

그녀로서는 생전 처음 가져보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며 그려보고 싶어서
병이 들 것 같은 남자다.

미아는 요새 지영웅과 침대에 누워있는 꿈을 매일 꾼다.

"밥은 오빠가 사고 내가 맥주를 살게요.

내가 늘 보아둔 곳이 있어요.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 호프집인데 같이 가요"

이제 서서히 지영웅도 그녀에게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영신은 병원에 있고 더구나 이 아가씨는 한시간동안의 데생 모델을
원한다.

벌거벗고 모델을 서다보면 어떤 실수를 할지 몰라도 그녀가 소원하는대로
모델을 서줄까도 생각해본다.

"돈을 암만 주어도 모델을 할 시간도 서줄 마음도 없다면 어떻게
할건데?"

지영웅이 슬슬 웃으면서 말했으므로 미아도 농을 반 섞어서 대담하게
대시한다.

"오빠가 오케이할 때까지 따라다닐 거야"

"이거 큰일 났군"

그러나 그는 싱글싱글 웃고 있다.

옛날에 4만원을 받고 미대생들의 모델을 서준 것을 생각하면 자기의
몸값이 정말 대단히 올랐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도취돼 다시 싱글거리며
미아에게 윙크를 한다.

이러 놈을 미지왕 이란다지.지코치는 스스로 실소가 터져 죽을 지경이다.

"왕년에 내가 모델을 한두번 한걸 어떻게 알았어? 그거 아주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 되기 때문에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던걸. 모델료가 문제가
아니야"

"직업적인 모델도 했어요?"

그러자 지영웅은 펄적 뛴다.

김영신은 이제 그의 약혼녀로 자리잡았다.

"이봐, 나는 재벌 약혼녀를 가지고 있어. 이러다가 누구 혼사길 막으려고
이러시나.

그리고 나는 미국으로 곧 출국할거니까 헛물켜지 마시고 이 정도에서
단념해요"

"운동선수로 근무한다던데요.

수위 아저씨가 그랬어요.

차도 좋은 차 타구.그런데 왜 나는 한번도 오빠가 차 탄 모습을 못
보았을까요? 골프코친 것 같다던데"

"차가 없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압구정동 바닥에서는 걸어다니는게
애국하는 거야. 교포가 무슨 차냐? 차는"

"와아 오빠는 정말 멋지다.

나처럼 사고가 건전하니까 정말 좋다"

이 아가씨야, 좋아하지 말아. 내가 보통 남잔줄 알고 덤볐다간 너 큰코
다친다.

아니야, 큰코 다치는 것은 네가 아니고 나다.

영신이 지금 입원해 있어서 망정이지 정말 겁나는 계집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