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들어 무척 바빠졌다.

노동법 파문, 한보 부도 등 굵직굵직한 경제사건의 와중에서 경제계의
목소리를 모으고 전하느라 쉴 틈이 없다.

자유기업센터는 이렇게 바빠진 전경련이 별도의 룰(role)을 주기 위해 만든
연구/홍보기관이다.

경제현안에 매달려야 하는 전경련 대신 자유시장경제주의의 전파를 전담하고
있다.

자유기업센터는 지난 3월 출범 직후부터 ''작은 정부'' 개혁은 실패했다며
시장경제 원리와 어긋난 정부의 정책을 맹공해 왔다.

최근에는 공무원은 물론 국회의원과 기업임원 수도 지나치게 많다고 목소리
를 높였고 정치자금을 실명화하고 공교육도 민영화하자고 외치고 있다.

"저러다 다치겠다"는 걱정이 들 정도다.

이 센터를 이끌고 있는 공병호 소장(37)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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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난 사람 = 권영설 < 산업1부 기자 > ]

-권력공백기를 틈타 기업편만 든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던데요.

"능력대로 경쟁하자는 시장경제주의를 강조하다보니 받는 오해지요.

일부에선 저더러 보수주의자라고도 해요.

저는 어디까지나 급진 자유주의자일 뿐입니다"

-언제부터 자유주의자가 됐습니까.

"오래된 건 아닙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근무하기 시작한 90년께 기업인을 매도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것을 보고 자유시장경제주의를 확실히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지식인들조차 기업가들을 근로자들의 피를 뽑아 자기 배를 채우는 사람들
로만 보고 있더라구요.

저는 사업가 아버지를 보고 자라 기업인들의 삶이 개인적인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잘 알고 있었거든요"

-부친께서 무슨 사업을 하셨습니까.

"통영에서 멸치어장을 운영하셨지요.

배가 많을 때는 80척이 넘었을 정도였습니다.

통발 대구리 등 연근해 어업은 다했고 남해연안에선 처음으로 굴을 양식
하고 밀감을 재배했어요"

-부잣집 아들이었군요.

"그런 소리는 들었지만 실제로 부를 경험해본 적은 별로 없어요.

79년엔 아버지가 부도를 내 폭삭 망하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너희 아버지는 남 좋은 일만 하다가 평생 살았다"고 원망섞인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가족은 돌보지 않고 일에 파묻혀 지내는 아버지가 정말 싫었습니다.

공부를 택한 것도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였어요"

-그러면 반기업주의자라야 맞지 않습니까.

"커서 보니 자기 가족이 굶건 말건 사업 그 자체에 미쳐서 사는게 기업인
이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먹고 살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80년대엔 반기업주의가 시대정서 비슷하게 퍼졌었지요.

"87년 이후 노사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되면서 반기업주의가 확산됐습니다.

특히 6공화국 들어서는 기업인을 매도하는 분위기가 절정을 이뤘지요.

고위관료로 입각한 지식인들조차 상인들과 기업인들을 마구 매도하는걸
보고 자유주의의 전파자가 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지식인들에 대해 묘한 반감을 갖고 있는것 같습니다.

"직접 돈을 벌어본 경험이 없고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많을수록 지식인은
관념적이 됩니다.

현실을 모른다는 얘기죠"

-공소장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천만에요.

저는 돈을 좀 벌었다가 그걸 다시 투자해 망하고, 또 빚을 내서 새롭게
일어서는 사업가 아버지를 바로 옆에서 보고 자랐습니다.

경제활동을 관념적으로만 보는 실수는 절대 안합니다"

-어쨌든 빈부격차 해소를 주장해온 지식인들의 주장은 옳은 것 아닙니까.

"인간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사회주의적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20~30명의 소집단에 맞는 체제예요.

수많은 사람들을 제대로 먹여 살리려면 교환을 통한 시장경제체제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것도 완벽한 자유주의에 입각한 것이라야 최고의 효율을 올릴수 있어요"

-혹시 우리 사회풍토에 자유주의가 잘 안맞는 건 아닌가요.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평등주의와 집단주의 성향을 잘 나타냅니다.

개인주의나 자유주의가 자라날 토양이 척박하지요.

자유주의계열의 지적 전통도 없구요.

다행스러운 것은 개방과 국제화가 가속화되면서 우리 국민도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은 몫을 갖는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지고 있어요

" -영국의 대처 전 총리처럼 자유주의 신념을 가진 지도자가 나오면 개혁이
가능할까요.

"지도자 한 사람이 할수 있는 건 아녜요.

더구나 매년 6%이상씩 성장하고 실업률이 4%에 불과한 이런 현실에서는
경제체제를 바꾸자는 말이 통하지 않지요.

잘 되고 있는데 왜 바꾸느냐는 반발만 사게 되니까요.

한동안 우리사회는 경제분야에서 정치논리가 지배하는 양상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선거가 있는 올해를 걱정하는 기업인이 많습니다.

"정치인들이 돈쓸 논리를 개발하고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세금
부담만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자유기업센터는 돈안드는 선거를 주창했고 앞으로 납세자의 권리
찾기운동을 벌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국민 모두가 워치독(watch dog :감시견)이 되자는 거지요.

후보들의 경제정책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작업도 벌일 계획입니다.

대선뿐만 아니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모든 국가권력에 대해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해 감시하고 견제할 작정입니다"

-자유기업센터가 독자적으로 벌이기엔 벅찬 작업일 것 같습니다.

"이미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법경제포럼을 만들었고 앞으로 소설가 경제학자
기업인 대학생 주부 등을 대상으로 자유주의자 모임을 결성할 겁니다.

숫자는 많지 않아도 좋아요.

확실한 신념을 가진 소수면 됩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수많은 우리 사회의 자유주의자들이 공감할 주장을
펼쳐 나갈 겁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