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에서 덕동저수지를 지나 감포로 넘어가는 추령재는 강원도 산골
못지 않은 절경의 연속이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북동쪽 자락을 타고 황룡계곡을 꼬불꼬불 돌아
추령재로 오르는 길은 알맞게 가파른 고갯길이다.

오른쪽은 벼랑이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넓은 저수지 덕동호가 그림같다.

고갯길을 오를수록 산굽이로 이어진 덕동호는 더욱 넓게 펼쳐진다.

숨차게 추령고개를 넘어서면 저멀리 동해바다가 가물거리고 구절양장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내리막길도 스릴을 맘껏 느낄만큼 가파르기는 마찬가지다.

고개를 내려오면 대종천과 수평으로 뻗은 넓은 들판길이 곧바로 동해바다
문무왕 수중왕릉에 닿는다.

경주에서 감포에 이르는 이 길은 국내에서 몇손가락 안에 드는 환상적인
드라이브코스로 꼽힌다.

이 길주변에는 산과 호수, 고갯마루와 계곡, 넓은 들판과 강, 그리고
바다까지 어우러져 우리강산의 갖가지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맛볼수 있게
해준다.

특히 양북중학교 앞에서 용당리로 이어지는 논길을 가로지른 직선도로(929번
지방도)의 전원풍치는 말그대로 압권이다.

<>.이 드라이브코스 주변에는 신라의 또 다른 숨결을 느낄수 있는 사찰들이
숨어 있다.

감포쪽으로 토함산과 함월산의 협곡 20km를 달리면 안동이 나온다.

이 곳에서 좌회전하여 함월산 쪽으로 들어가면 기림사와 골굴암이란
불국사보다 훨씬 오래된 절이 자리잡고 있다.

반대편 토함산쪽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장항리 폐사지의 고즈넉한 정취가
기다린다.

기림사주차장에서 신록이 우거진 좁은 길을 따라 5분 정도 오르면 기림사
정문에 이른다.

길옆에는 우거진 나무사이로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 땀을 식혀준다.

이름부터 특이한 기림사는 신라초기 인도 범마라국의 사문 광유성인이
창건, 한때 임정사라고도 불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 절 주지 장법일스님은 "기림사의 창건연대가 불국사(529년)보다
3백여년 정도 앞섰으며 기림사란 이름도 부처가 20년동안 머무르면서 설법을
편 기원정사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불교의 전래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372년)라는 것이 통설이나 그전에 이미
불교가 유입되었다는 주장도 있어 이 절은 그런 신비감도 느끼게 한다.

창건연대가 오래된 기림사에는 흔치않은 문화재도 많다.

그 중에서도 보물 제 415호인 건칠보살좌상(종이로 만들어 그위에 옻칠을
하고 다시 금을 입혀 조성)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이란다.

천년 가람의 체취를 느끼게 해주는 대적광전(보물 제958호), 매월당
김시습의 사당에 있는 초상화도 눈길을 끈다.

이 사당은 김시습이 기림사에 머문 인연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세운
사당이다.

또한 2동의 박물관에는 보물 제959호로 일괄 지정된 비로자나불 복장전적들
이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엔 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까지의 불전들이 들어 있어 사경발달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전시된 불전을 보니 신라때는 두루마리형태였다가 고려에서 병풍형이
되었고 조선시대에 와서 첩으로 변해 왔다.

별도의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문화재가 많은 이 절은 문화재절도범들이
끊이지 않아 걱정이다.

최근에도 국내에서 유일한 감지(감물을 먹인 종이)로 만든 불전을 도둑
맞았다는 법일스님은 "박물관에 철제문을 해 달았으나 문화재전문털이범을
당할 수 없다"며 "문화재 보존을 외치기에 앞서 절도범으로부터 문화재를
지키는 것이 더 급한 실정"이라고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기림사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은 오종수라 불리는 물맛.

차를 끓여 마시면 맛이 으뜸이라는 감로수, 눈이 맑아 진다는 명안수,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하다는 화정수, 기골이 장대해 진다는 장군수,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오탁수는 기림사의 보배이다.

또 기림사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골굴암의 마애여래좌상도 불상의 조각이
해맑아 놓치지 말아야 할 수작이다.

마애불 주변에는 모두 22개의 굴들이 있는데 모두 신라시대 스님의 수도장
이었다고 한다.

기림사 (0561)44-2292

<>.기림사를 빠져나와 대본리에 가까워지면 길가 왼편 언덕 위에 거대한
3층석탑 2기가 우뚝 솟아 있다.

감은사지 3층 석탑이다.

감은사지는 두가지 측면에서 눈물이 나올듯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통일 신라 초기에 축조된 삼층석탑은 통일국가의 위엄을 나타내듯 웅장하고
엄숙하며 힘이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감은사 삼층석탑은 우리나라 삼층석탑 중 가장 큰 규모로 총높이가 13m나
되는 장중한 스케일이다.

높지만 견실한 화강암 2단 기단위에 3층을 쌓아 단정하고 위엄있는 품새가
주위의 풍경과 어울려 보는 이를 무언의 힘으로 압도한다.

감은사가 조성된 경위도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은 생전에 직접 대왕암의
위치를 잡고, 대왕암이 내려다 보이는 용당산을 뒤로 하고 용담이 내려다
보이는 명당에 절을 세워 불력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문무왕이었지만 당시 시시때때로 쳐들어와
성가시게 구는 왜구는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아닐수 없었다.

이에 문무왕은 동해 바닷가에 절을 지어 이를 막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절을 완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아들인 신문왕이 그 뜻을
받들어 이듬해(682년) 절을 완공하여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감은사로
이름하였던 것이다.

그때는 바다였다는 대종천은 지금은 말라 버렸지만 빈 절터에 우람하게
서있는 삼층석탑은 문무왕의 기상과 신문왕의 효심을 천년의 세월을 관통
하여 그대로 전하는 듯하다.

<>.토함산에서 내려오는 대종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곳에 자리한 대본(봉길)
해수욕장은 수심이 얕아 자연수영장으로 인기가 높다.

해변에 모래 대신 둥근 돌이 깔려 있는등 독특한 면이 많다.

언제나 세차게 밀려왔다 빠지는 파도가 검은 자갈돌이 구르는 소리와 함께
장중한 해조음을 선사한다.

해안에서 2백m 떨어진 바다에 문무대왕의 수중릉이 자리잡고 있다.

바위섬 사이 작은 못안에 문무대왕의 유골이 들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거북모양의 큰 바위가 일명 대왕암이다.

봉길해수욕장주변에는 그외에도 4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감포읍에 오류 나정, 양남면에 나아 관성해수욕장이 있다.

이중 오류는 모래가 부드러워 모래찜질이 유명하고 우거진 소나무고개숲이
민물에 접해 가족캠프에 적합하다.

차머리를 돌려 북쪽으로 조금 가면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견대라는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해수욕장과 대왕암을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다.

이견대에서 감포항에 이르는 31번 국도해변에서는 동해의 쪽빛 물결과
아담한 어촌마을이 엮어내는 한가로운 정경에 젖을 수 있다.

문의 경주시청 공보담당관실 (0561)779-6061

< 감포=노웅 기자 >

[ 교통및 숙박 ]

경주~감포가도를 거쳐 대왕암이나 봉길해수욕장을 가려면 경주를 거치는
방법이 지름길이다.

경주고속도로 경주IC에서 경주시내 서라벌로~고속주유소~구황로~보문단지
남쪽~덕동호~국도제4호 추령~어일리삼거리~지방도 제929호 대본삼거리로
잇는 코스가 제길이다.

서울에서 경주행 고속버스는 오전7시부터 저녁6시까지 매 35분 간격으로
있다.

소요시간은 4시간30분정도.

경주에서 대본리까지는 노서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양남행 완행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숙박시설은 경주에 많다.

경주보문단지에는 현대 힐튼등 특급호텔을 비롯해 경주교육문화회관
한화.한국콘도등이 있고 호텔들이 7,8월중 서머패키지를 판매하고 있어 이를
활용하면 좋다.

봉길해수욕장과 감포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마을에도 식도락가의 발길을
붙잡는 횟집과 여관 민박집들이 많다.

대본리에서 감포읍에 미처 못간 해변에 있는 레저타운 늘시원은 회타운
(0561-44-1177)과 호텔(0561-43-6500)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

도다리등이 나오는 모듬회는 1인분이 1만5천원으로 깔끔하게 내놓는다.

호텔객실요금은 3만~4만원선이다.

봉길해수욕장에는 여관 1개소와 22개소의 민박집이 있다.

오류해수욕장엔 여관 3개소, 민박 40여개소가 있다.

(0561)771-8747, 44-2578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