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좌초"의 강진은 끝나지 않았다.

특히 호남 경제의 핵인 광주권에는 일파만파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1차 희생양은 아시아자동차에 납품해온 협력업체들.

지난 18일에는 시트제조업체인 일진산업이 1차부도를 냈다.

강판 납품업체인 동진철강이 지난 16일 부도를 낸데 이은 두번째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시중에는 어느 어느 업체도 위험하다는 설이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일종의 "부도 패닉"이 광주 산업계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광주의 연쇄부도 공포는 이유가 있다.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아시아자동차와 협력업체의 비중이 워낙 큰 탓이다.

지역 생산과 고용인원의 30%라는 숫자가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해 준다.

그동안 덕산그룹의 부도후유증에 시달려온 광주경제는 "기아사태"로
치명상을 입게 됐다.

그만큼 중소기업 등 광주의 재계는 속이 탄다.

언제 부도를 맞을지 몰라 안절부절 못한다.

시중은행들은 아시아자동차에서 받은 어음을 할인해주지 않고 있다.

거의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다.

이에따라 협력업체 사장들은 직원들의 임금과 자체발행한 어음을 막느라
허겁지겁이다.

영업이나 생산은 그 다음문제다.

일단 사채시장부터 한바퀴 돌아보는게 일과처럼 돼버렸다.

"진성어음마저 시중은행들이 할인을 기피하니 중소협력업체는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A산업 B사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요즘 광주엔 홧술을 먹는 중소기업사장들이 많다.

지난 20일 저녁에는 부도가 난 동진철강 대표 김모씨와 함께 술을 마신
H상사 대표 박모씨가 귀가도중 음주운전에 적발되자 "차라리 구속되고 싶다"
며 음주측정을 거부하고 경찰서행을 자청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남산단 관리공단의 김영현 총무계장은 "산단내 아시아자동차 관련업체
들이 70여개사가 있으나 이들 업체의 사장들이 모두 돈을 구하러 다니기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는 실정"이라고 공단분위기를 전한다.

협력업체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단내에서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온
음식점이나 공구상들은 더욱 큰 피해를 입고 있다.

18일 낮 12시30분 광주 하남산단 6번도로에 있는 일식당 완도회센터.

평일 같으면 점심을 찾는 손님들로 발디딜 틈 없는 곳이지만 기아그룹의
부도유예조치에 따른 파장으로 16일부터는 전체 좌석의 절반이상이 비었다.

"회는 쳐다보지도 않고 값싼 탕종류만 주문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이 식당을 운영해오던 김군택(38)사장은 "경기침체와
한보사태이후 다소 진정되던 공단내 분위기가 이번 사태로 완전히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고 한숨을 내쉰다.

김사장은 앞으로 3천원에서 3천5백원 사이의 값싼 음식을 취급할
계획이지만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협력업체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으로 앞으로 어떻게든
꾸려나가겠지만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협력업체의 근로자들에게 점심식사를 대오던 한 식당주인의 푸념이다.

지난해 공단내 한 업체의 부도로 3백여만원의 외상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
기아파문으로 더 어려워지게 됐다고 울상이다.

협력업체에 각종 공구를 납품해온 공구상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공단내 10여개 업체에 각종 공구를 납품해온 대한종합상사의 김영학
사장은 "거래업체중 3개업체가 아시아자동차의 협력업체로 5백만원 가량의
물품대금을 받지못했으나 다른 공구상에 비해 적은 액수이기 때문에
대금받는 것을 거의 포기했다"고 밝혔다.

당구장 볼링장 노래방 호프집 등 공단내 대부분의 편의시설에 손님들이
크게 줄었다고 전하는 김사장은 "돈을 버는 것은 커녕 현상유지라도 하면
최상이라는게 공단내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심정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지역경제계는 "지역경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 정부의 발빠른
지원과 시중은행의 적극적인 금융지원이 있어야 연쇄부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 광주=최수용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