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보고 아닌 회동...국정전반 조율..달라지는 이대표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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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당 이회창대표가 22일 ''금의환향'' 했다.
지난 1일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서기 위해 대표직을 사퇴하고 당을 떠난지
꼭 3주일만에 다시 대표가 돼 당사에 돌아왔다.
그것도 집권여당 사상 최초의 지유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직을 거머쥔채.
이대표는 이날오전 9시께 당사에 도착, 현관에 나와 있던 박관용 사무총장
박종웅 기조위원장 나오연 함종한 정책조정위원장 이규택 홍보위원장 등
당직자들로부터 영접을 받았다.
이대표는 이어 곧바로 6층 대표실로 올라가 이만섭 전대표서리와 인사를
나눈뒤 주요당직자회의를 주재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표 겸 대통령후보자
로서의 바쁜 하루를 보냈다.
평소 말수가 적은 편인 이대표는 대통령후보자라는 높아진 위상 때문인지
더욱 말을 자제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주요당직자회의에서도 예산재선거와 포항보궐선거, 당선축하연 등 일정에
관해서만 의견을 물었을뿐 주로 듣기만 했다.
이에앞서 대통령후보가 된후 첫 공식일정인 국립묘지 참배때도 앞으로
넘어야할 여러 고비를 염두에 둔 듯 입을 꽉 다문채 결의를 다지는 모습
이었다.
이대표는 당 3역을 비롯한 주요당직자 30여명과 함께 국립묘지를 참배하며
대권고지를 향한 자세를 가다듬었다.
한 고위당직자의 전언은 그의 결의가 무엇을 향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이 당직자는 "5년전 언론에 이회창이라는 이름이 올랐느냐"며 "그런 그가
대통령후보가 될 정도로 시대흐름이 급변하고 있다"며 이대표가 ''민심읽기''
에 신경을 적잖이 신경을 쓰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대표는 이날 김영삼대통령과도 청와대에서 두차례 만났다.
오전 만남은 김대통령이 이회창대통령후보로부터 경선 당선인사를 받는
자리였다면 만찬을 겸한 오후 독대 는 총재와 대표간의 주례회동 성격으로
볼수 있다.
과거 대표시절엔 ''주례보고''라는 명칭을 썼으나 이젠 당당히 주례회동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의전상은 위상의 높아졌음은 물론 힘의 중심도 급속도로
이대표쪽으로 쏠리고 있다.
7룡중 하나에 불과했던 이대표가 경선관문을 뛰어넘으면서 이날부터 국정
운용 전반에 관해 김대통령과 협의 조율하기 시작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김대통령이 이날아침 축하 난화분과 함께 조홍래 정무수석을 구기동
이대표 자택으로 보내 경선과정에서의 노고를 위로하고 청와대 저녁만찬
일정및 정국현안 등에 관해 미리 설명한 것은 그 대표적 예로 봐야 한다.
이대표는 이날오전 청와대 방문을 마친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충남예산
재선거와 경북포항 보궐선거를 지원하기 위해 헬기편으로 동서를 오가며
정당연설회에 참석했다.
이대표는 선산이 있는 예산에서는 큰 환영을 받아 열세인 국면을 전환할수
있게 됐다며 환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대표는 이날저녁 김대통령과의 두번째 만남에서는 오전때와는 달리
당무현안 등에 관해 밀도있는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대표의 구기동 자택에는 아침일찍부터 경찰관 4~5명이 배치돼
출입자를 점검해 이대표의 달라진 위상을 더욱 실감케 했다.
<김삼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3일자).
지난 1일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서기 위해 대표직을 사퇴하고 당을 떠난지
꼭 3주일만에 다시 대표가 돼 당사에 돌아왔다.
그것도 집권여당 사상 최초의 지유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직을 거머쥔채.
이대표는 이날오전 9시께 당사에 도착, 현관에 나와 있던 박관용 사무총장
박종웅 기조위원장 나오연 함종한 정책조정위원장 이규택 홍보위원장 등
당직자들로부터 영접을 받았다.
이대표는 이어 곧바로 6층 대표실로 올라가 이만섭 전대표서리와 인사를
나눈뒤 주요당직자회의를 주재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표 겸 대통령후보자
로서의 바쁜 하루를 보냈다.
평소 말수가 적은 편인 이대표는 대통령후보자라는 높아진 위상 때문인지
더욱 말을 자제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주요당직자회의에서도 예산재선거와 포항보궐선거, 당선축하연 등 일정에
관해서만 의견을 물었을뿐 주로 듣기만 했다.
이에앞서 대통령후보가 된후 첫 공식일정인 국립묘지 참배때도 앞으로
넘어야할 여러 고비를 염두에 둔 듯 입을 꽉 다문채 결의를 다지는 모습
이었다.
이대표는 당 3역을 비롯한 주요당직자 30여명과 함께 국립묘지를 참배하며
대권고지를 향한 자세를 가다듬었다.
한 고위당직자의 전언은 그의 결의가 무엇을 향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이 당직자는 "5년전 언론에 이회창이라는 이름이 올랐느냐"며 "그런 그가
대통령후보가 될 정도로 시대흐름이 급변하고 있다"며 이대표가 ''민심읽기''
에 신경을 적잖이 신경을 쓰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대표는 이날 김영삼대통령과도 청와대에서 두차례 만났다.
오전 만남은 김대통령이 이회창대통령후보로부터 경선 당선인사를 받는
자리였다면 만찬을 겸한 오후 독대 는 총재와 대표간의 주례회동 성격으로
볼수 있다.
과거 대표시절엔 ''주례보고''라는 명칭을 썼으나 이젠 당당히 주례회동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의전상은 위상의 높아졌음은 물론 힘의 중심도 급속도로
이대표쪽으로 쏠리고 있다.
7룡중 하나에 불과했던 이대표가 경선관문을 뛰어넘으면서 이날부터 국정
운용 전반에 관해 김대통령과 협의 조율하기 시작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김대통령이 이날아침 축하 난화분과 함께 조홍래 정무수석을 구기동
이대표 자택으로 보내 경선과정에서의 노고를 위로하고 청와대 저녁만찬
일정및 정국현안 등에 관해 미리 설명한 것은 그 대표적 예로 봐야 한다.
이대표는 이날오전 청와대 방문을 마친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충남예산
재선거와 경북포항 보궐선거를 지원하기 위해 헬기편으로 동서를 오가며
정당연설회에 참석했다.
이대표는 선산이 있는 예산에서는 큰 환영을 받아 열세인 국면을 전환할수
있게 됐다며 환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대표는 이날저녁 김대통령과의 두번째 만남에서는 오전때와는 달리
당무현안 등에 관해 밀도있는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대표의 구기동 자택에는 아침일찍부터 경찰관 4~5명이 배치돼
출입자를 점검해 이대표의 달라진 위상을 더욱 실감케 했다.
<김삼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