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지표상으로는 경기가 조금씩 뜬다.

그런가 하면 경제계 일각에선 성급하게 경기회복론을 띄우기까지 한다.

금년도 경제성장의 전망치를 상향조정하는 연구기관도 이미 한둘이 아니다.

우리경제가 호전되고 있다면 누군들 즐겁지 않으랴.

그러나 웃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한다.

한국경제는 진정 호전되고 있나.

우리 경제를 배에 비유해 보자.

이름하여 한국경제호라 하자.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경제호가 순조로운 항해로 들어섰다는
뜻이다.

배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 배의 성능이 좋아야 한다.

둘째 사공의 자질이 좋아야 한다.

셋째 파도가 잔잔하고 순풍이 불어야 한다.

이 세가지 조건을 갖추고 한국경제호가 순항할 때 경제는 진정으로
호전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호는 이 세가지 조건중에서 어떤 조건의 힘으로 항속이
빨라지고 있나.

첫째 한국경제호의 성능을 보자.

한국경제호의 성능은 이코노미스트들이 이야기하는 경제구조이다.

경제구조란 경제가 어떤 산업들로 짜여져 있고, 이 짜여진 구성체로서의
산업조직이 어떤 작동원리로 돌아가는 가를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추상적으로 정의하면 경제구조란 경제적 요소(element)로서 이루어진
시스템과 그 작동 메커니즘이다.

예를 들면 경제를 구성하는 산업들이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인가 높은
산업인가, 산업들은 얼마나 소프트화되어 있는가, 기술수준은 높은가
낮은가, 정보화는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 산업간의 유기적인 관계는
어떠한가.

이들 산업의 짜임(구성 조직)을 돌리는 규칙 관행 제도는 얼마나 합리적
이고 자율적인가 하는, 핵심 개념들이 경제구조를 설명한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높은(부가)가치, 높은 기술, 높은 정보화와 소프트화,
시장법칙의 원활한 작동과 높은 경제적 자유가 경제구조의 지향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 한국경제의 구조는 변하지도 개선되지도 않았다.

즉 한국경제호의 성능은 개선되지 않았다.

둘째 한국경제호의 사공을 보자.

한국경제호의 사공은 경제의 3대주체인 기업과 가계와 정부이다.

이 3대 사공의 자질, 즉 경제하는 마음이나 자세나 능력이 달라진 데가
있나.

없다.

먼저 가장 중요한 사공인 기업과 이를 이끄는 기업의 경영자를 보자.

그들은 여전히 고비용 타령을 하고 있다.

자신들은 잘하고 있는데 고비용구조(고규제 포함)때문에 사업을 못하겠다
면서 책임전가만 하고 있다.

전향적으로 볼 때 "고비용구조"란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다.

왜냐하면 비용구조는 경직적(rigid)이기 때문에 한번 형성되면 하향 조
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영의 적극적인 해법은 경영혁신과 기술혁신으로 고비용구조를
극복하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과 경영자는 이점에서 가시적인 변모를 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자는 산업사회의 리더이다.

즉 그들은 한국경제호의 선장이다.

이 선장이 변하지 않았다.

가계는 변했는가.

가계는 국민경제의 순환에서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다.

가계노동자의 생산성이 단기간에 달라졌다는 통계는 없다.

가계의 소비패턴도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특히 일부 부유층이 선도한 과소비풍조는 상존하고 있다.

마지막 사공, 정부관료는 어떤가.

그들은 한때 규제혁파란 용어까지 만들며 소매를 걷어붙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의 수사학은 변했지만 "간섭의 관행"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재벌에는 겉으로 허세를 부리지만 속으로 밀리고 있다.

관료들은 재벌에 대한 단기적인 손찌검이 제반 경제지표를 망가뜨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셋째 한국경제호가 항해하고 있는 바다의 파도는 어떠하며 바람은
역풍인가 순풍인가.

한국경제호는 지금도 지구촌 시대의 무한경쟁이란 격랑을 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단지 달라진게 있다면 약간의 순풍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엔화강세라는 순풍이다.

이 순풍 때문에 자동차 조선 반도체 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수출의 증가
템포에 힘이 붙고 있는 정도이다.

이를 보면서 성급한 경제낙관론, 경기조기회복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성급한 낙관론, 조기회복론이 한국경제호의 순항을 위한 결정적인
조건들, 배의 성능과 사공의 자질에 대한 경제주체의 자성을 무디게 해서는
결코 안된다.

한국경제호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순풍도 불어야 한다.

그러나 순풍때문에 한국경제호의 항속이 빨라지는 것은 가장 적게
바람직한 현상이다.

가장 크게 바람직한 현상은 어떠한 격랑과 역풍도 이겨내고 항해를 지속할
수 있도록 사공의 항해술과 배의 성능이 향상되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주체들의 의식개혁 및 자세전환, 혁신적인 경영탤런트의 개발
그리고 구조조정이다.

이러한 작업에는 적어도 3~5년의 기간이 걸린다.

중장기적인 시간축에서 지속되는 혁신과 제욕의 틀 안에서 한국경제호는
순항의 모멘텀을 찾아내야 한다.

경제에는 점진적인 사고방식만 통한다.

시루떡은 쌓여야 한다.

일시적인 외풍으로 한국경제호의 항속이 조금 빨라졌다고 일희할 때가
결코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