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거래가 돈세탁수단으로 애용돼온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다이아몬드와 돈세탁은 가까운 인척관계인 셈이다.

벨기에 앤트워프시장이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시장으로 발돋움한 것도
양자간의 이런 관계를 절묘하게 이용한 결과다.

그러나 앤트워프시장이 올들어 위기를 맞고 있다.

다이아몬드 거래가 위축되면서 일부 거래상들이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나
태국의 방콕 등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이 멀지않아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거래상들간에 급속히
확산되는 것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다.

앤트워프시장은 세계 원석다이아몬드 거래의 80%, 가공다이아몬드 거래의
절반을 담당한다.

지난해 이 시장의 거래총액은 2백30억달러, 직간접 고용인력은 3만명에
달했다.

이 시장의 다이아몬드 수출규모는 벨기에 수출총액의 7%를 차지한다.

앤트워프시장붕괴는 벨기에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다이아몬드시장을
대혼란으로 몰고갈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앤트워프의 위기는 왜 일어나고 있는가.

2차대전후 벨기에 정부는 히틀러를 피해 유럽을 떠났던 유태계
다이아몬드상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이아몬드업계에 외환거래실적의
정부제출의무 등을 면제시켰다.

70년대에는 거래고객의 신분을 익명으로 처리토록 보장한 이른바
돈 페드로법안을 도입했다.

부유층들이 돈세탁을 위해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도록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 조치로 앤트워프는 다이아몬드 가공센터에서 세계 최대의 거래시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80년대말 유럽연합(EU)은 돈세탁과 탈세방지법을 제정했다.

단일시장을 만들기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

벨기에 정부도 이에 호응, 지난 91년 관련법을 본격 시행하면서
돈 페드로법의 시행을 중단했다.

벨기에 정부는 이후 앤트워프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크레디트뱅크를
대상으로 탈세 및 돈세탁 방조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말에는 탈세방지를 위해 다이아몬드업계와 여기에 자금줄 역할을
해온 시중은행들에 투명한 거래실적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련의 조치로 다이아몬드 거래고객의 신분노출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당연히 큰손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거래상들은 올들어 정부에 업계의 위기를 호소하면서 규제완화를 위한
특별법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법이 제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유태계 거래상들은 사업환경이 양호한 지역으로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벨기에가 아니라 다이아몬드시장을 선택해 앤트워프로 왔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유재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