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성서공단이 흔들리고 있다.

한보부도 이후 생산 판매가 크게 위축됐던 이곳은 기아사태를 계기로 일대
위기를 맞고 있다.

돈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대기업들도 믿을 수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진성어음조차 거래가 잘
안된다.

기업들은 물건을 많이 팔기 보다는 돈떼이지 않기 위해 바둥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몸을 바짝 움츠리고 불안에 떠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안경 기계부품 업체가 많은 3공단은 완전히 파장(?) 분위기다.

아세아종합기계 신한견직 평화크랏치 등 대형공장들이 다른곳으로 떠나거나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하고 있는 탓이다.

그 자리에는 소규모 임대 공장들이 들어오고 있다.

3공단의 종업원수가 30%이상 줄었다는 사실이 이곳의 "몰락"을 웅변해 준다.

감태룡 대구은행 3공단지점장은 "설비투자가 거의 없고 업계의 채산성이
크게 떨어지면서 만기가 된 시설자금이 회수되지 않아 문제"라고 말했다.

한때 종업원이 1천명에 이르렀던 안경테 생산업체인 삼성공업은 사실상
생산을 포기했다.

88년부터 인건비가 급등한데다 중국산 저가품까지 범람, 시설과 공장을
모두 임대해 버렸다.

성서공단관리공단의 임대조사결과는 이 지역경제의 쇠퇴를 잘 나타내 준다.

1천93개의 입주업체가운데 사업을 포기하고 임대로 전환한 업체가
3백여개사에 달한다.

김태호 성서산업단지관리공단이사장은 "이런 상태로 가면 공단이 제기능을
못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여파는 곧바로 인근 화물운송업체들에게 미치고 있다.

인건비 유류비는 올라만가는데 운송량이 줄어드니 죽을 맛이다.

일부 업체는 차주들과의 입금문제로 화물운송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있다.

성서공단에서 설비 조립 용접용 로봇 등 자동화설비공장을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정영록 (주)엔트 사장은 심경이 매우 착잡하다.

독일에서 최신 기술을 확보, 이제부터본격적인 사업을 전개하려는 판에
기아사태로 돈가뭄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대기업과의 계약서만 있으면 대출을 해주던 파이낸스 회사들까지 몸을
사리고 있다.

정사장은"돈구할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 않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
하소연했다.

대기업에 주로 납품,어려움이 적은 견실한 회사가 이정도인데 영세업체들의
사정은 더말할 나위가 없다.

돈을 융통하려면 은행과 보증보험에 각각 담보를 제공해야 하고 납품처에는
공사보증까지 해야 하는 3중고를 겪어야 한다.

겹겹이 쳐진 규제도 기업의 목줄을 죄고 있다.

한 중소업체 사장은 "수출이 늘어나 무역금융을 쓰려해도 수출실적이
적다는 이유로 자금을 쓰지 못하게 하고 계약 선수금 한도까지 규제하는
데는 정말 할말이 없다"고 토로했다 사업여건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고의로
부도를 내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일부업체들은 경매까지 6개월이상 걸리는 점을 악용, 일단 부도를 내고
현금으로 재료를 사서 계속 공장을 가동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이판사판인데 적어도 금융비용은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행정기관의 지원은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다는게 업체들
의 한결같은 불만이다.

성서공단의 한 관계자는 "행정기관이 예년에 없던 도로 점용료 1억원을
부과하고 있으면서도 환경미화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면도로 청소도
해주지 않고 있다"고 행정기관의 무성의를 지적하기도 했다.

*** 한마디 ***

홍사헌 < 성서산업단지관리공단 전무 >

최근 공단 입주업체들 사이에는 기업 확장이나 재투자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섬유업체의 경우 어음할인이 어려운 것은 물론 외상거래기간도 90일
에서 30일로 줄어드는 등 갈수록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의 자금사정은 사상 최악의 수준이다.

이것을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특히 담보위주의 대출관행은 가장 시급히 해소돼야 할 부분이다.

대구는 특히 섬유산업에 치중돼 있는 산업구조조정이 가장 시급한 과제
이다.

새로운 업종 유치를 위해 성서공단의 분양가를 크게 낮추어 줄 것을
여러차례 대구시에 건의했다.

공단도 업체의 부담을 줄이고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자체 수익사업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 대구=신경원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