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열린 아세안외무장관회담과 아시아/태평양중앙은행총재회의
(EMEAP)가 동남아 통화위기에 대한 ''약효'' 있는 방안을 내놓지 못함에
따라 이 지역의 통화위기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강해지고 있다.

두 회의는 통화가치의 안정의지를 거듭 확인했지만 그것만으로 통화가치
폭락세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 등의 헤지펀드들이 지난주 상하이(상해)에서 열린 EMEAP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투매를 중단했으나 금주들어 다시 투매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주말 달러당 29바트대까지 회복하기도 했던 바트화가 21일 개장초부터
32.10바트로 떨어지는 급락세를 보인게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도 흘러
나온다.

영국의 한 금융시장정보분석가는 "외환시장이 역내 중앙은행의 통화안정의지
를 시험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주에도 동남아통화의 환율이 심한 변동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국 바트화는 7월초 통화위기가 시작된 이래 지난주말까지 24%의 평가
절하폭을 보였다.

현지언론들은 28일 바트화가 안정을 위해 "타논 재무장관이 IMF 관계자를
만나 경제재생을 위한 차관제공을 요청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타논장관의 일본방문 무렵만해도 "태국경제는 튼튼하다"는 PR성
설명에만 치중하던 상황에서 크게 변한 것이다.

그만큼 "현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융관계자들은 태국경제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50억~1백억달러의 긴급수혈
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편 태국언론들은 렁차이 마라카논드 중앙은행총재가 금융혼란과 관련해
사의를 표명했다고 28일 일제히 보도했다.

필리핀 페소화는 달러당 28.50페소에 지난주 거래를 마쳐 통화위기가
시작된 이후 8%의 절하폭을 보였다.

페소화하락은 정치권의 쟁점으로 옮겨 붙은 상태다.

야당세력들이 내년 대선을 의식, 이번 통화폭락사태를 "경제실정"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라모스정권에 근본 대책이 요구되고 있으나 10억달러가 조금 넘는 IMF
차관만을 받아놓은 필리핀정부는 "역부족"만을 느끼고 있다.

특히 필리핀은 계절적으로 해외로부터 수입이 급증하는 이른바 "수입시즌"이
시작됐다.

안스코르 하게도른 증권의 노엘 레예스 조사부장은 "이번주부터 수입업자들
의 달러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페소화의 추가하락이 있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말레이시아 링기트의 경우 지난주말 현재 달러당 2.5493링기트로 7월초
통화위기가 나타난 이후 5%의 가치하락을 보였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는 "조지 소로스"를 거명,
아세안 통화위기가 "미얀마의 아세안가입을 반대해 왔던 서방금융권의 농간"
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올해 의장국으로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회담에서는 "오로지
(동남아 통화위기에 대한) 우려와 협조를 강조"하는 무대책을 얻는데 그쳤다.

이밖에 인도네시아 루피아와 싱가포르달러는 지난 3주동안 각각 7.4%,
2.6%의 평가절하폭을 기록중이다.

유럽의 한 금융기관은 "외환보유고의 고갈로 중앙은행들의 통화시장 개입이
성공을 거둘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은 돈과의 싸움이다.

투매에 나서는 돈(헤지펀드등)에 대항, 돈(차관)을 끌어대는 싸움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냐에 통화위기의 향배가 달려 있다.

< 박재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