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용 목요시평] 기아사태와 시장원리 .. <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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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그룹이 부도처리되고 삼미, 진로, 그리고 대농그룹 등이 부도위기에
몰린데 이어 재계 8위의 기아그룹이 다시 부도유예협상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대기업군의 경영악화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환경에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소득창출의 주체가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잇따른 대기업군의 부도위기가 단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파장을 야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가 주는 다음 몇 가지 교훈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되새긴다면 향후 우리 경제는 크게 발전할 수 있다.
첫째, 과거에 아무리 탄탄대로를 걸었던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시장 여건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은 효율적인 기업에게는 과실을 선물하지만 비효율적인 기업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처벌하기 때문에, 국내 및 국제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잘못된 투자나 경영미숙은 그것이 비록 대기업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바로
기업의 도산을 초래한다.
이런 측면에서 툭하면 "우리 기업은 대부분 정경유착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설득력에 한계가 있다.
정경유착만으로 대부를 일구어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이번 대기업 집단의 부도위기를 계기로 기업은 나라의 빵공장이라는
사실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기업이 근로자와 소비자를 희생삼아 부를 축적하는 경제족이라는 인식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파괴적인 것이다.
근로자와 소비자를 희생삼는 기업은 시장에서 생존하지 못하고 당연히
도태되기 때문이다.
자원을 잘못 이용하여 손실을 입은 기업은 멸망과 함께 재편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
사기업 위주의 경제체제를 흔히 "이윤"체제라고 부르지만 더 정확하게는
"이윤과 손실"체제이다.
실제로 기업은 이윤 부분보다 손실부분에 더 노심초사한다.
이런 까닭에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책무라고 일컬어지는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말은 재고되어야 한다.
기업은 이윤극대화, 그래서 손실극소화를 위해 상품을 생산하여 소비자
에게 공급하는 과정에서, 생산요소의 공급자에게는 소득을 창출시켜 경제적
생활을 영위케 하고, 투자 기회를 확대하고 기술혁신을 주도하여 부를
축적해 가는 경제주체다.
다시말해, 근로자를 고용하고 그들에게 봉급을 제때에 많이 지급함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를 축적해 나가는 것으로 기업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이윤추구를 두고 "탐욕의 화신"이라고 비난하지만 기업은 이윤 추구 과정
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에 선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상의 요구는 기업의 존립 근거를 파괴할 뿐이다.
셋째, 기아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적 캠페인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도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요구는 재고되어야 한다.
이런 행동은 국민들이 지금까지 기업, 특히 대기업에 대해 취해 온
"정서"에 비추어볼 때 이해하기 난해하다.
업종전문화를 통해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고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임금
인상을 통해 근로자들의 복지를 증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그런 주장 덕분에 기업은 중병에 걸려 결국 종사자들의 일터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런 기업에 많은 돈을 대출한 금융기관 역시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러 나라 전체의 지급제도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정부는 무엇이든지 잘 알아서 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하고, 근로자
들은 봉급을 받아갈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하나의 대기업이 부도위기의 벼랑에 설 때까지는 그러한 징후가
여러 차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종업원 대량 실직으로 인한 사회적 여파, 제3자 인수시 기업의
대형화 우려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시장에서의 신호는 차단되었다.
물론 부도위기가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불운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경영잘못으로 빚어진 것인지를 식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것은 시장의 판단과 처치에 맡겨두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불운에 의한 것이라면 그
기업이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시장은 더 효율적인 주체에게 자원을 재배치하여
사회적 이득을 가져오도록 한다.
관련 임원이나 종업원들은 기아의 회생을 당연히 바랄 것이지만 기아가
제3자에게 흡수-합병된다고 하더라도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단기적이다.
제3자에게 넘어간다고 해서 우리 나라 경제의 생산능력에 변화가 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더 나은 주체가 인수, 정상화하여 더 효율적인 기업으로 다시
태생시킬 것이다.
현재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에 더 적합하다면 그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 퇴출의 시기가 차단되었을 때,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바로 해당
기업이다.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1일자).
몰린데 이어 재계 8위의 기아그룹이 다시 부도유예협상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대기업군의 경영악화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환경에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소득창출의 주체가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잇따른 대기업군의 부도위기가 단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파장을 야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가 주는 다음 몇 가지 교훈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되새긴다면 향후 우리 경제는 크게 발전할 수 있다.
첫째, 과거에 아무리 탄탄대로를 걸었던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시장 여건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은 효율적인 기업에게는 과실을 선물하지만 비효율적인 기업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처벌하기 때문에, 국내 및 국제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잘못된 투자나 경영미숙은 그것이 비록 대기업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바로
기업의 도산을 초래한다.
이런 측면에서 툭하면 "우리 기업은 대부분 정경유착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설득력에 한계가 있다.
정경유착만으로 대부를 일구어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이번 대기업 집단의 부도위기를 계기로 기업은 나라의 빵공장이라는
사실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기업이 근로자와 소비자를 희생삼아 부를 축적하는 경제족이라는 인식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파괴적인 것이다.
근로자와 소비자를 희생삼는 기업은 시장에서 생존하지 못하고 당연히
도태되기 때문이다.
자원을 잘못 이용하여 손실을 입은 기업은 멸망과 함께 재편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
사기업 위주의 경제체제를 흔히 "이윤"체제라고 부르지만 더 정확하게는
"이윤과 손실"체제이다.
실제로 기업은 이윤 부분보다 손실부분에 더 노심초사한다.
이런 까닭에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책무라고 일컬어지는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말은 재고되어야 한다.
기업은 이윤극대화, 그래서 손실극소화를 위해 상품을 생산하여 소비자
에게 공급하는 과정에서, 생산요소의 공급자에게는 소득을 창출시켜 경제적
생활을 영위케 하고, 투자 기회를 확대하고 기술혁신을 주도하여 부를
축적해 가는 경제주체다.
다시말해, 근로자를 고용하고 그들에게 봉급을 제때에 많이 지급함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를 축적해 나가는 것으로 기업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이윤추구를 두고 "탐욕의 화신"이라고 비난하지만 기업은 이윤 추구 과정
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에 선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상의 요구는 기업의 존립 근거를 파괴할 뿐이다.
셋째, 기아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적 캠페인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도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요구는 재고되어야 한다.
이런 행동은 국민들이 지금까지 기업, 특히 대기업에 대해 취해 온
"정서"에 비추어볼 때 이해하기 난해하다.
업종전문화를 통해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고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임금
인상을 통해 근로자들의 복지를 증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그런 주장 덕분에 기업은 중병에 걸려 결국 종사자들의 일터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런 기업에 많은 돈을 대출한 금융기관 역시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러 나라 전체의 지급제도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정부는 무엇이든지 잘 알아서 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하고, 근로자
들은 봉급을 받아갈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하나의 대기업이 부도위기의 벼랑에 설 때까지는 그러한 징후가
여러 차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종업원 대량 실직으로 인한 사회적 여파, 제3자 인수시 기업의
대형화 우려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시장에서의 신호는 차단되었다.
물론 부도위기가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불운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경영잘못으로 빚어진 것인지를 식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것은 시장의 판단과 처치에 맡겨두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불운에 의한 것이라면 그
기업이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시장은 더 효율적인 주체에게 자원을 재배치하여
사회적 이득을 가져오도록 한다.
관련 임원이나 종업원들은 기아의 회생을 당연히 바랄 것이지만 기아가
제3자에게 흡수-합병된다고 하더라도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단기적이다.
제3자에게 넘어간다고 해서 우리 나라 경제의 생산능력에 변화가 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더 나은 주체가 인수, 정상화하여 더 효율적인 기업으로 다시
태생시킬 것이다.
현재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에 더 적합하다면 그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 퇴출의 시기가 차단되었을 때,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바로 해당
기업이다.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