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BM의 김차장.

직장생활 10년만에 처음으로 올해는 아내와 함께 3주남짓한 일정으로
유럽을 일주하기로 했다.

지난해만 해도 엄두를 못냈다.

휴가가 보름을 조금 넘어 비행기나 길에서 뿌리는 시간을 제하고 나면
일정이 너무 빡빡해질 것이 우려됐던 것.

그러나 올해부터 회사에서 국내최초로 "선택적 복리후생"을 도입한 덕분에
여유잡으며 아내와 달콤한 유럽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됐다.

<> 선택적 복리후생

이는 직원들의 입맛에 따라 복리후생 항목을 고르도록 하는 것이다.

종래 운영되던 복리후생항목 중에는 몇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쓰지 않는
것들이 있게 마련.

의료비를 전액 지원해줘도 건강한 20대 직원은 몇년에 한번 혜택을 받을까
말까다.

이런 항목들은 버리고 자신의 소용에 닿는 항목만을 골라 나름대로 복리
후생계획을 설계하도록 하는 것이 이 제도다.

<> 유럽여행을 하고 싶은 김차장의 선택

김차장의 선택메뉴를 보자.

그의 복리후생총점은 9백53점.

의료비 치과진료비 생명.상해보험 가족건강구좌 등 항목별 기본점수
8백3점에다 근속연수 6~10년된 직원들에게 주는 보너스 1백50점을 합친
점수다.

우선 의료비는 50% 보상을 택했다.

가족들이 모두 건강해 최소한의 보상으로 족하다고 생각한 것.

치과에 다니는 가족도 없어 치과진료비보상도 포기했다.

생명.상해보험은 기본점수인 "연봉의 3배보상"을 택했다.

건강에는 자신있지만 불의의 사고에는 대비를 해두자는 계산이다.

연 20만원씩 보약 등에 지원되는 "가족건강구좌"를 선택했다.

40대가 내일 모레이니 몸보신은 해야 한다는 아내의 고집에 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총5백39점을 쓰고 이제 남은 점수는 4백14점.

김차장은 하루 1백35점하는 휴가를 3일치 "샀다".

10년 근속자가 쓸 수 있는 휴가 20일에다 구입한 휴가 3일을 더해 23일을
확보한 것.

휴가를 더 쓰려면 다른 항목을 줄이면 그만이다.

(거꾸로 휴가를 팔고 다른 항목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최종으로 남은 9점은 "복리후생구좌"에 남겨놨다.

남은 점수로는 성형수술 에어로빅 레저시설이용료 골프웨어구입 등 각종
여가활동에 드는 돈을 점수만큼 지원받을 수 있다.

<> 한국IBM이 노린 것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날로 다양해지는 직원들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만족시켜보자는 뜻이다.

기존의 틀가지고는 X세대 신입사원에서부터 입사 20년된 간부사원까지
천차만별인 직원들의 복리후생취향을 일일이 다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복리후생항목을 무한정 늘려놓을 수만도 없는 일.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미국 IBM본사에서 채용하고 있는 이 제도다.

직원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한 것은 당연하다.

원하는 복리후생을 최대한 누릴 수 있게 됐으므로.

<> "남는 장사"

장부상으로는 올해 복지예산이 작년보다 직원 1인당 30만원씩 총4억여원이
더 들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절감요인을 감안하면 단연 "남는 장사"라는
것이 한국IBM의 판단.

외국업체들의 경험에서 실제로 증명됐다.

인사.조직전문컨설팅회사인 왓슨와이어트의 분석결과 이 제도를 도입한
미국업체의 절반이상이 10%이상 복지비용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이제 포천지 선정 5백대 기업중 75%이상이 이를 도입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95년부터 도입붐이 불고 있다.

국내기업도 수십여곳이 한국IBM에 이 제도에 관해 문의해오고 있다.

최근 제일제당이 이를 도입하는 등 우리나라에도 복리후생의 "맞춤시대"가
성큼 다가서고 있다.

< 노혜령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