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없는 기아자동차는 얼마나, 또 어디까지 굴러갈수 있을까"

4일 채권단회의가 "자금지원 없는 부도유예"로 결론을 내림에 따라 향후
기아그룹이 자력으로 얼마나 당면한 위기를 버텨낼수 있을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아그룹은 그동안 "자금지원 없는 부도유예"에 철저히 준비해 왔다.

채권단들이 자금지원의 선결조건으로 요구해온 김선홍회장의 퇴진문제는
결코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룹의 자금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채권단이 당초 주기로
했던 1천8백억원이 있다면야 좋겠지만 받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비상
자금운용계획을 짜놓아 부도유예기간동안 큰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가 이처럼 표면상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비축식량"으로 두달은 버텨낼 뒷심이 있기 때문이다.

기아그룹이 이달내로 현금화할 수 있는 "비상금"은 7천억원 수준.

<>특별할인판매 대금을 포함한 내수판매대금 4천억원 <>수출액 3천억원중
할인이 어려운 수출환어음(D/A) 1천억원을 제외한 2천억원 <>사모사채 발행
등을 통한 임직원 5백억원 등이다.

9월에는 임직원 모금액이 없는 대신 부동산 매각대금 1천억원이상이 추가로
들어올 전망이어서 두달동안 거두어들일 자금은 모두 1조4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월평균 수입은 기아그룹의 평상시 한달 회수자금인 6천억원에 비해 1천억원
가량 많은 것이다.

여기에다 오는 14일 2차 부동산 매각 설명회를 전후로 아시아자동차
광주공장 부지등 알짜배기 땅의 매각이 원활히 이뤄질 경우 추가로 수천억원
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입은 이처럼 늘어나는 반면 지출은 허리띠를 졸라매 평소보다 1천억원
가량 줄어들게 된다.

7월중에만 1천4백여명이 퇴직하고 이달말까지 2천여명의 임직원이 추가로
감축돼 톡톡한 인건비 절감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

나머지 직원들의 임금도 절반으로 줄었다.

또 부도유예 결정에 따라 일부 원리금 상환이 연기되는등 금융비용도
당장은 줄일 수 있어 평소 6천억원에 이르는 지출규모를 5천억원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계산대로라면 기아그룹은 한달에 2천억원을 비축해 부도유예기간중 모두
4천억원 정도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부도위기를 맞은 협력업체
지원에 들어가는 자금은 빠져 있다.

부도유예기간동안 금융권이 협력업체의 진성어음을 계속해 무시해 버리면
나머지 자금은 협력업체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운영자금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보험 리스 등 제3금융권의 움직임이다.

기아가 제3금융권으로부터 끌어다 쓴 자금은 1조여원.

제3금융권이 부도유예 결정에 동참하게 되면 괜찮지만 이들이 만약 대출금
회수에 들어갈 경우 기아그룹은 심각한 상황에 빠져 버리게 된다.

이 돈은 신용대출에 의한 단기성 자금인 만큼 채권회수에 불안을 느끼는
제3금융권이 언제든지 자금회수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만일 기아의 우려대로 제3금융권이 자금회수에 나서기만 하면 기아의
"야무진 꿈"은 일순간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따라서 이렇게 보면 앞으로 두달간 기아의 운명은 제3금융권이 생사의
칼날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도유예기간 이후도 만만치가 않다.

두달을 버텨낸다해도 기아의 여건상 그뒤에 돌아오는 어음을 막기에는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제2금융권에 대한 기아그룹의 단기부채는 4조4천억원.

대부분 1주일내의 단기연장을 걸어놓은 상태여서 또다시 대규모의 어음
교환을 치를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두달동안 내놓은 부동산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문제는 쉬워진다.

하지만 계획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할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3자 인수설도 끊임없이 퍼져 나갈 것이다.

기아그룹은 앞으로 헤쳐 나가야할 수많은 난관 가운데 이제 그 첫번째
관문만을 통과한 셈이다.

< 김정호.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