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잇따른 부도여파로 국가 신용도가 하락할 조짐이 뚜렷해
지면서 해외 단기자금 차입에 비상이 걸렸다.

단기차입은 경상수지 적자로 생겨난 외화자금 부족문제를 해결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됐던 탓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외화유동성
위기로 연결될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신용등급 하락 우려 =국제신용평가 기관들은 기아사태 이후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겠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기아사태 등으로 등급
하향 조정대상으로 선정된 제일 등 5개 은행을 방문해 조사활동을 벌였다.

무디스사도 한국과 산업.기업.주택.수출입 등 4개 국책은행을 단기 신용등급
하향조정 요주의 리스트에 올렸고 S&P도 한국과 산업.수출입은행 한전
한국통신의 장기 신용평가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무디스사는 국가와 은행부문 신용평가 담당자를 이달말부터 다음달 초순까지
한국에 보내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디스는 재정경제원과 기업은행 등 관련기관 방문일정도 잡아 놓고 있다.

빠르면 10월께 조사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무디스나 S&P가 신용등급 하향조정 요주의 대상에 올리면 빠져 나오기가
힘든 것으로 알려져 신용도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금융계의 중론이다.

게다가 지금으로선 기아사태 등 국내경제 불안, 수출경쟁력 상실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폭 확대, 북한의 도발가능성 등 신용도 결정 요인도 개선될
조짐이 전혀 없다.

따라서 신용도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외화유동성에 어떤 영향 미치나 =현재 중.장기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지만 기업어음(CP) 발행을 통한 단기차입은 큰 충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CP는 머니마켓 콜 채권 등에 비해 차입비용이 덜 들지만 P1 이상의 신용도를
가져야 발행할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에게는 P1 이상인 기관이 발행한 CP에만 투자토록 내부
규정이 운영된다.

올들어 산업.기업.수출입 등 일부 은행만 CP를 발행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국가 신용도가 P2 등급으로 하락하면 CP 발행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CP 발행한도는 1백30억달러.

현재 발행잔액은 산업은행이 30억달러, 기업은행이 10억달러, 수출입은행
9억달러 등 70억달러로 추산된다.

CP의 만기는 1개월짜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신용평가 기관이 단기 국가
신용도를 하향 조정할 경우 국책은행들은 그 시점부터 바로 CP 발행 잔액만큼
신규 차입에 나설 수밖에 없다.


<> 전망과 대책 =국책은행들은 이런 여건을 감안, 중.장기 차입일정을
서둘러 마련함으로써 자금공백 상태를 메우는 등의 계획을 추진중이다.

다른 금융기관들의 자금수요를 보전하기 위해 머니마켓의 신용한도를
유지하는 등의 대책도 강구중이다.

그렇지만 국책은행들까지 머니마켓이나 중.장기 차입에 몰릴 경우 적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관들로서는 차입비용이 더오르는 부담을 감수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장기채권 발행이나 머니마켓 참여 등은 단기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는 근본 치료책이 될수 없다"면서 "우리 경제의 장기 전망을
국제신용평가 기관에 적극 설명하는 등의 정부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기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