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호 헤르만 헤세의 어린 시절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아들을 성직자로 키우려는 부모의 뜻에 따라 14살때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엄격한 규율을 견디지 못하고 9개월만에 자퇴했다.

이 때의 체험은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골드문트가 수도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신학도의 길을 포기하는 내용으로 되살아난다.

이후에도 헤세의 방황은 계속돼 김나지움에 들어갔다가 1년만에
그만두고 잠시 상인수업을 받거나 서점 점원 등으로 전전한다.

20대초반까지 이어진 그의 방황기는 홀로 세상과 대면하면서 작가로서의
감각을 키워준 스승이기도 했다.

27살때 발표한 장편 "페터 카멘친트"로 성공한 이후, 그는 창작에 전념해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유리알 유희" 등
대표작을 잇따라 내놨고 4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독일어권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필독 고전으로 손꼽히면서
우리나라에도 3백여종 이상 소개됐다.

그러나 국내에 선보인 그의 작품들은 옛날 말투나 지나친 윤문으로 인해
원전의 묘미를 살리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헤세 탄생 1백2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들이 정식 저작권계약을 통해
새롭게 번역 출간된다.

민음사가 독일 주어캄프사와 계약을 맺고 전12권의 "헤르만 헤세 선집"을
기획,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황야의 이리"
등 8권을 내놓았다.

나머지 "시집" "동방순례" "클링조어의 마지막 이름" "동화"는 내년중
나올 예정.

헤세의 작품이 다시 읽히는 이유는 뭘까.

많은 사람들은 사춘기때 밤을 새워가며 읽던 "데미안" "지와 사랑"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원제)등 그의 명작들을 기억한다.

몸과 마음이 훌쩍 커버린 지금, 어른의 시각으로 다시 펼쳐보면
그 속에는 어릴 때 미처 몰랐던 삶의 높낮이가 또다른 무늬로 새겨져 있다.

그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해 인기를 끄는 것은 욕망을 딛고 성숙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고뇌와 자유에의 의지가 설득력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헤세가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간했던 소설.

한 소년의 자아찾기 과정이 상징적인 기법과 신화적 모티브로 그려져
있다.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 당대문화를 비판하고 젊은이들에게 삶의 근원과
진정한 자아를 찾으라고 역설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데미안"보다 먼저 나온 성장소설로 순진한 아이
한스 기벤라트가 학교와 사회의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질식돼가는
이야기다.

"페터 카멘친트"는 헤세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첫 장편.알프스
고지대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페터가 미지에 대한 꿈으로 고향을
등지고 세상에 나가 작가가 돼 세속의 명예를 누리다가 진정한 신뢰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헤세가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고백한
성장소설.

나르치스의 이성이 세계를 통일된 모습으로 파악한다면 골드문트의
감성은 세상을 분열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대립적인 두 인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진정한 본성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줘 비평가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헤세의 작품"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이번 선집의 표지에는 헤세가 그린 수채화가 실려있어 시인.작가뿐만
아니라 화가로서의 예술적 열정을 엿보게 한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