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공항→하늘(?)"

대한항공기의 괌 추락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는 미교통안전위원회
(NTSB)가 말하는 추락이유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조사 첫날인 6일에는 조종사의 실수라고 예단을 내렸었다.

2백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비행기 추락 사고는 조종실내의
실수에서 발생했다는 것.

여기에 미국 언론들이 가세해 조종사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몰아갔다.

그 다음날 NTSB는 한발 물러났다.

인재인 것은 분명한데 조종실의 실수인지 아니면 관제사의 실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지 블랙 NTSB대변인은 "착륙에 관련된 사람의 실수다.

그러나 조종사인지 관제사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수는 조종실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게 우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NTSB의 태도는 더 달라졌다.

"조종사의 실수는 없는 것 같다"며 "조종사 과실론"을 스스로 부정했다.

대신 공항과 관제이상으로 시선이 옮겼다.

괌공항의 경보장치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밝혀내 관제시스템에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고 밝혔다.

물론 NTSB는 여러가지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돼 사고가 일어났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적어도 조종사의 일방적인 실수라고 예단했던 것은 성급한 판단
이었음이 판명됐다.

전문가들은 미국 언론이 예단하고 있는 조종사의 실수가 아니었음을 밝힐
수 있는 또 다른 단서가 아직 조사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날씨다.

미국측은 당시 갑작스런 기류변화나 번개 등 이상 기후현상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 당시 풍속은 초속 2~2.5m로 공항폐쇄기준(초속 25m)에 훨씬 못미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르다.

생존자 등 이판석씨는 "추락후 정신을 차려보니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기상청이 분석한 결과도 소나기에 안개가 겹친 극도의 악천후였다.

미국측이 이야기하는 당시 날씨조건과 한국기상청 및 생존자들이 말하는
날씨는 너무도 다르다.

따라서 날씨가 어떠했느냐를 밝혀내는 것도 사고원인 규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한항공기의 정확한 추락 원인은 블랙박스가 해독되기 전까지는 밝히기
힘들 전망이다.

따라서 NTSB가 계속 편견을 가지고 성급한 속단을 내린다면 외신이 전하는
사고원인도 덩달아 계속 바뀔 게 분명하다.

< 특별취재반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