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직업의 대명사, 은행원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몇해전부터 명예퇴직바람이 불더니 급기야는 사실상의 "강제퇴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경기불황및 기업연쇄도산과 맞물려 더욱 심해지고 있어
"일단 입행만 하면 정년까지는 떼논 당상"이라는 말은 이제 전설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은행원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제일은행.
유원건설 우성건설은 물론 한보그룹과 기아그룹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자구노력차원에서 앞으로 3년동안 1천1백명을 감축키로 하고 1차적으로 오는
18일 점포장급 간부 1백70명을 집단퇴직시키기로 했다.

이는 전체 1, 2급직원 6백7명중 28%에 해당하는 수준.

얼마전까지만해도 정년(만58세) 이후를 걱정해야 할 나이에 이들은 정든
직장을 떠나야 할 지경에 처하게 됐다.

물론 은행이 이들을 강제로 내쫓는건 결코 아니다.

형식은 어디까지나 자의에 의한 희망퇴직(명예퇴직)이다.

그러나 희망퇴직 직원수를 늘리기 위해 은행이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걸 보면 상당수는 강제퇴직으로 해석될수도 있다.

사정은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지난해말부터 올해까지 무려 2천7백명을 명예퇴직시켰다.

강력한 자구노력을 추진중인 서울은행이 8백20명을 퇴직시킨 것을 비롯
<>국민 5백41명 <>조흥 2백85명 <>외환 2백1명 <>한일 1백75명 등이다.

대구 부산 전북 제주 충청 등 지방은행들마저 명예퇴직행렬에 동참했다.

지난 93년 (주)한양의 법정관리신청으로 동반부실화 위기에 몰린 상업은행은
2년에 걸쳐 무려 2천여명의 직원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몇년전까지만해도 1만명을 웃돌던 대형은행의 직원수는 이제
7천명대로 줄어든 상태다.

점포와 업무량이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은행원 1인당 업무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이란 점이다.

금융자율성이 확대될수록 경영리스크도 그만큼 커지게 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은행원들에게 돌아오고 있는 제일은행의 경우를 보면 더욱 그렇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