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스윙이 좋고 샷이 좋더라도 골프의 우승자는 따로 정해져
있게 마련이다.

다 잡은 우승을 놓치면 사람들이 말한다.

"그대 역시 압박감에 무릎꿇은 허약한 인간이었다"고.

허망한 패배도 한번은 용서된다.

그러나 몇번이 쌓이면 인간이 맛 볼 수 있는 가장 처절한 "좌절"로 자리
잡는다.

"멘탈 게임"이 전부인 프로세계에서 "2위의 좌절"은 가장 견디기 힘든
상처이자 시간이다.

현대골프에서 가장 처절한 좌절의 주인공은 물론 그렉 노먼이고 콜린
몽고메리 (올 US오픈 2위)나 예스퍼 파니빅 (브리티시오픈 2위)도 남달리
메이저의 쓰라림을 맛 본 장본인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그 좌절을 이겨내며 골프를 계속하는가.

대회를 앞두고 예스퍼 파니빅(32.스웨덴)은 "브리티시오픈 이후의
심정"을 담담히 밝혔다.

"느끼는 것"이 많아 소개한다.

<>.물론 나는 실망했다.

94년 턴베리브리티시오픈 2위는 우연성이 짙었으나 이번 브리티시오픈때는
우승을 기대했기 때문에 실망이라고 컸다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프로는 우승이 전부"라고 말한다.

특히 미국적 관점이 그렇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때때로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승이 전부라면 최종일에 95%의 선수들 (우승 가능성이 없는 선수들)은
플레이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우리가 필드에 나가 플레이하는 것은 나가는 것이 가치가 있고
경쟁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 자체에 나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2라운드 18번홀에서 18m 버디퍼트를 넣은 후 "스코어가 어떻든
이 퍼트 하나로 내가 여기에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존재이유이다.

나는 브리티시오픈이 끝난 며칠후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그런 과정을 다시 겪어야 한다면 얼마든지 감수하겠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면 다시 2위를 하겠다"고.

좌절의 고통을 "어떻게 다스렸느냐"는 설명키 힘들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내부 싸움"이었다.

그러나 감정을 다스리는 과정은 많은 것을 배우게 만든다.

그것은 골프게임뿐만 아니라 인간적 성장에 막대한 도움을 준다.

승부를 겪으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좌절을 어떻게 이겨내는가"는 "인생을 어떻게 가꿔나가느냐"에 대한
귀중한 잣대가 된다.

우리가 골프를 치는 것은 골프를 진정 사랑하기 때문이고 플레이하는
것 자체에 인생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골프는 진정 위대한 게임이다.

<>."외계인" 파니빅.

"괴짜"의 이면에도 다 생각이 있고 철학이 있다는 사실을 잘 엿볼수
있는 얘기다.

골프의 좌절을 이 보다 더 적절히 표현할 수 있겠는가.

노먼이나 몽고메리도 다 같은 생각일 것이다.

노먼이 위대한 골퍼로 평가받고 몽고메리가 인정받고 있는 것도 그
엄청난 좌절의 고통에도 불구 "여전히 골프를 치고 있다"는데 있다.

이번 US PGA선수권대회에서의 "좌절자"도 같은 방법으로 그 과정을 이겨
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