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보고 사표를 낼수야 없지 않느냐"

김선홍회장의 사표제출 문제에 대한 기아그룹의 반응이다.

한달간의 장마끝에 구름이 개이고 무지개가 떴다고 하지만 기아그룹은
아직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을 다녀가면서 채권단
은행장들이 긴급회동을 갖는등 기아사태에 물꼬가 트이는 듯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대표의 방문을 여러가지 이유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로 보기
어려운데다 채권단이나 정부의 방침도 과거의 것을 그대로 되뇌는데 그치고
있다는게 기아의 분석이다.

우선 채권단이 내세우고 있는 조건부 사표가 그렇다.

기아는 "채권단이 이미 한달전부터 사표제출을 요구하면서 "자구계획을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상징이지 당장 수리한다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계속 보여 오질 않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채권단이 김회장 사표를 조건으로 지원하겠다는 1천8백억원도 이미 1차
채권단회의에 앞서 제시했던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3자 인수론 배제도 이미 강경식총리도 "이번 정권에서 3자인수는 없을 것"
이라고 못밖았던 부분이다.

기아그룹은 오히려 이대표의 회사방문 의미가 과대 해석되고 채권단이나
정부가 내놓은 제안이 새로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회장의 사표가 1천8백억원과 바꿀수 있는 싸구려였다면 이미 제출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게 기아의 주장이다.

기아그룹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다른 곳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첫째는 부도사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아시아자동차 기산 기아특수강
등의 문제 해결이며 둘째는 9월29일 부도유예협약 적용 종료이후 채권상환이
연장될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1천8백억원도 "코끼리 비스켓"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김회장의 사표를 받으려면 이런 문제가 선행돼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김회장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김회장이 기아특수강 문제를 직접 해결했던 것처럼 아시아자동차 기산
등의 문제 해결에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사표를 낼 경우 바로 물러나는 것은 아니라해도 다른 기업 총수들과 만나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끈떨어진 회장"의 역할은 작아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김회장이 물러났을 때의 손익계산서를 수차례 검토해본 기아그룹은
두가지 문제의 해결점이 찾아지지 않는한 당분간 김회장의 사표 문제는
검토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물론 김회장이 회사 살리기 차원에서 스스로 사표를 던질수도 있지만
그것은 큰 것을 주고 급한 불을 끄자는 "모르핀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게
회사 임직원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김회장은 독단적으로 사표를 제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김회장은 기아그룹의 볼모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6일자).